[5·18 진실찾기 40년] ② 진상규명의 열쇠…발포명령·헬기사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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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자위권 발동 강조' 문건 찾았지만 발포 명령 직접 증거 부족
헬기 사격, 20여명이 진술…고 조비오 신부 명예훼손 재판 '주목'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다. "
국방부 과거사위원회는 2007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군의 진압 과정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시민을 향한 최초 발포 명령 책임자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5·18 40주년을 맞았지만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밝히는 열쇠가 될 집단 발포 명령자와 헬기 사격에 관한 진상규명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 "전 각하가 자위권 발동 지시"…'자위권 발동=발포 명령' 두고 이견도
지난 40년간 5·18 발포 책임자를 찾기 위한 국가 차원의 조사는 1988년 국회 광주특위, 1995년 검찰 조사와 1996년 재판, 2007년 국방부 과거사위원회 조사, 2017년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 조사 등이 있었다. 검찰과 과거사위는 실권자이자 퇴진 요구를 받았던 전두환이 측근을 통해 자위권 발동을 명령했고 무차별 살상이 일어나 '자위권 발동 명령=발포 명령'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전씨가 명령했다는 직접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과거사위는 "발포 명령자는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어 실명을 명기하지 못했다"며 "전남도청 앞 발포를 직접 명령한 문서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주영복 당시 국방부 장관실에서 열린 군 수뇌부 회의에 보안사령관이었던 전씨는 참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 각하: 초병에 대해 난동 시에 군인복무규율에 의거 자위권 발동 강조'라고 회의 내용을 기록한 문건이 확인돼 전씨의 측근이 회의에서 명령을 전달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검찰도 앞서 1995년 내란 혐의 등 수사에서 이 같은 논리를 폈다. 12·12와 5·18을 다뤘던 1996년 1심 재판에서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였으나 항소심에서는 "자위권 보유 천명이 곧 발포 명령이라고 볼 수 없다"고 상반된 판단을 내렸다.
1심 재판부는 전씨가 1980년 5월 21일 국방부 장관실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더라도 정도영 보안사 보안처장을 참석하게 해 자위권 발동 명령을 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당시 상황을 볼 때 자위권 발동 지시가 실질적으로 발포 명령이었다고 강조했다.
이미 계엄군의 과잉 진압과 그에 따른 시민들의 무장으로 자위권 발동 시 교전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3회 경고 후 하퇴부 조준 사격' 같은 규정을 지킬 수 없음을 잘 알고도 명령했다는 것이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전씨가 배후에서 담화문 발표를 지시한 것은 인정되나 일반 시민에 대한 살인 행위까지 용인했다고 볼 증거는 없다고 판단했고 대법원도 항소심 법원의 손을 들었다.
결국 집단 발포와 학살의 최고 명령자는 없고 수행자만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 '목격자 20여명' 시민 향한 헬기 사격 있었나
5·18의 비극이 후대에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헬기 사격 문제도 명확히 규명돼야 한다
5·18 기간 광주 시내 상공에서 헬기 사격이 이뤄졌다는 목격담은 항쟁 이후 줄곧 이어졌다.
국방부는 군의 공식 기록과 탄흔 등 물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30년 넘게 목격자들의 증언을 부인했다.
그러나 옛 전남도청 건너편에 있는 '광주 금남로 1가 1번지' 전일빌딩 리모델링을 앞두고 이 건물 10층에서 2016년 탄흔이 다수 발견되면서 헬기 사격은 재조명됐다.
전씨가 2017년 펴낸 회고록에서 헬기 사격을 부인하고 목격자들을 비난하면서 진상규명 필요성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전씨는 헬기 사격을 촬영한 사진을 공개한 고(故) 아널드 피터슨 목사와, 헬기 사격 목격담을 공개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각각 '가면을 쓴 사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 전씨는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형사 재판을 받고 있다.
그동안 6차례에 걸친 검찰 측 증인신문에서 당시 학생·간호사·성직자 등 20명이 직접 목격하거나 헬기 파견 부대에 근무하며 보고들은 정황을 진술했다.
전씨 측 증인신문은 2차례 진행됐으며 광주에 투입됐던 육군 항공대 관계자 6명이 출석해 무장 헬기가 출동한 것은 사실이지만 광주에 도착한 뒤에는 비무장 상태로 다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반박했다. 5·18 단체 관계자는 "군 관계자들이 헬기 사격을 인정하면 내란 범죄로 처벌받을 수 있어 진술의 신빙성을 담보하기 힘들다"며 "특별법을 통해 진실을 증언하는 이는 사면하고 숨기는 자나 책임자는 처벌함으로써 과거사 청산 작업을 매듭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헬기 사격, 20여명이 진술…고 조비오 신부 명예훼손 재판 '주목'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다. "
국방부 과거사위원회는 2007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군의 진압 과정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시민을 향한 최초 발포 명령 책임자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5·18 40주년을 맞았지만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밝히는 열쇠가 될 집단 발포 명령자와 헬기 사격에 관한 진상규명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 "전 각하가 자위권 발동 지시"…'자위권 발동=발포 명령' 두고 이견도
지난 40년간 5·18 발포 책임자를 찾기 위한 국가 차원의 조사는 1988년 국회 광주특위, 1995년 검찰 조사와 1996년 재판, 2007년 국방부 과거사위원회 조사, 2017년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 조사 등이 있었다. 검찰과 과거사위는 실권자이자 퇴진 요구를 받았던 전두환이 측근을 통해 자위권 발동을 명령했고 무차별 살상이 일어나 '자위권 발동 명령=발포 명령'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전씨가 명령했다는 직접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과거사위는 "발포 명령자는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어 실명을 명기하지 못했다"며 "전남도청 앞 발포를 직접 명령한 문서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주영복 당시 국방부 장관실에서 열린 군 수뇌부 회의에 보안사령관이었던 전씨는 참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 각하: 초병에 대해 난동 시에 군인복무규율에 의거 자위권 발동 강조'라고 회의 내용을 기록한 문건이 확인돼 전씨의 측근이 회의에서 명령을 전달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검찰도 앞서 1995년 내란 혐의 등 수사에서 이 같은 논리를 폈다. 12·12와 5·18을 다뤘던 1996년 1심 재판에서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였으나 항소심에서는 "자위권 보유 천명이 곧 발포 명령이라고 볼 수 없다"고 상반된 판단을 내렸다.
1심 재판부는 전씨가 1980년 5월 21일 국방부 장관실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더라도 정도영 보안사 보안처장을 참석하게 해 자위권 발동 명령을 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당시 상황을 볼 때 자위권 발동 지시가 실질적으로 발포 명령이었다고 강조했다.
이미 계엄군의 과잉 진압과 그에 따른 시민들의 무장으로 자위권 발동 시 교전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3회 경고 후 하퇴부 조준 사격' 같은 규정을 지킬 수 없음을 잘 알고도 명령했다는 것이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전씨가 배후에서 담화문 발표를 지시한 것은 인정되나 일반 시민에 대한 살인 행위까지 용인했다고 볼 증거는 없다고 판단했고 대법원도 항소심 법원의 손을 들었다.
결국 집단 발포와 학살의 최고 명령자는 없고 수행자만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 '목격자 20여명' 시민 향한 헬기 사격 있었나
5·18의 비극이 후대에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헬기 사격 문제도 명확히 규명돼야 한다
5·18 기간 광주 시내 상공에서 헬기 사격이 이뤄졌다는 목격담은 항쟁 이후 줄곧 이어졌다.
국방부는 군의 공식 기록과 탄흔 등 물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30년 넘게 목격자들의 증언을 부인했다.
그러나 옛 전남도청 건너편에 있는 '광주 금남로 1가 1번지' 전일빌딩 리모델링을 앞두고 이 건물 10층에서 2016년 탄흔이 다수 발견되면서 헬기 사격은 재조명됐다.
전씨가 2017년 펴낸 회고록에서 헬기 사격을 부인하고 목격자들을 비난하면서 진상규명 필요성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전씨는 헬기 사격을 촬영한 사진을 공개한 고(故) 아널드 피터슨 목사와, 헬기 사격 목격담을 공개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각각 '가면을 쓴 사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 전씨는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형사 재판을 받고 있다.
그동안 6차례에 걸친 검찰 측 증인신문에서 당시 학생·간호사·성직자 등 20명이 직접 목격하거나 헬기 파견 부대에 근무하며 보고들은 정황을 진술했다.
전씨 측 증인신문은 2차례 진행됐으며 광주에 투입됐던 육군 항공대 관계자 6명이 출석해 무장 헬기가 출동한 것은 사실이지만 광주에 도착한 뒤에는 비무장 상태로 다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반박했다. 5·18 단체 관계자는 "군 관계자들이 헬기 사격을 인정하면 내란 범죄로 처벌받을 수 있어 진술의 신빙성을 담보하기 힘들다"며 "특별법을 통해 진실을 증언하는 이는 사면하고 숨기는 자나 책임자는 처벌함으로써 과거사 청산 작업을 매듭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