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번 환자, 대구 병원 입원중 교회·호텔 방문"…영남권 첫 환자 '비상'

지역사회 감염 본격화하나

대구시, 모든 공공행사 취소
환자 남편·자녀 모두 음성 판정

30번 환자 용유도·동묘역 찾아
29번 등 동선 완전히 파악 못해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1번째 환자가 대구에서 발생하면서 이 지역 주민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대구시는 환자가 이동한 곳을 즉각 폐쇄하고 공공 행사를 모두 취소하기로 했다. 29번·30번 환자에 이어 18일 확진된 31번 환자까지 세 명의 환자가 모두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환자로 확인되면서 전문가들은 “사실상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됐다”고 했다.
31번 환자가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대구 중리동의 대구의료원 음압병동 문이 닫혀 있다. /연합뉴스
대구 서구 거주하는 31번 환자이날 확진 판정을 받은 31번 환자(61·여)는 대구 지역 첫 코로나19 환자다. 지난 6일 교통사고를 당한 뒤 수성구의 새로난한방병원에서 7일부터 17일까지 입원 치료를 받았다. 발열, 폐렴 등의 증상이 심해진 환자는 택시를 타고 수성구보건소를 찾았고 이후 대구의료원으로 이송돼 격리 치료를 받고 있다.

대구시 등에 따르면 환자는 7일 오한 증상을, 10일 38도가 넘는 발열 증상을 호소했다. 이때 증상이 시작된 것으로 방역당국은 판단했다. 폐렴이 시작된 것은 14일부터다. 입원 중이던 환자는 택시를 타고 이동해 9일과 16일 대구 남구에 있는 신천지대구교회에서 2시간 정도 예배에 참석했다. 6일과 7일 두 차례 대구 동구 뷰티크시티테라스 오피스텔 201호 C클럽을 찾았다. 15일 점심에는 퀸벨호텔에서 지인과 밥도 먹었다.

이전까지 확진된 국내 코로나19 환자 중 대구에 갔던 환자는 17번 환자(37)뿐이다. 설 연휴를 맞아 지난달 24~25일 대구 본가와 처가를 방문했다. 방역당국은 이 환자와의 연관성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환자가 증상을 호소한 기간이 비교적 길기 때문에 원인을 찾지 못하는 환자로 남을 가능성도 높다.
환자 남편과 자녀 두 명 자가 격리

환자 발생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구시는 비상대응체제에 들어갔다. 대구시민의 날 행사 등 모든 공공행사를 취소키로 했다. 민간행사도 취소하도록 권고할 계획이다. 환자가 찾았던 곳은 폐쇄하고 방역을 시작했다. 수성구보건소는 4층 상황실용 공간을 제외한 모든 공간을 폐쇄했다. 새로난한방병원도 출입 제한 조치했다. 수성구보건소 소속 의사 3명, 간호사 2명 등 11명은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직장동료 4명, 택시기사 5명 등 15명도 자가 격리한 상태에서 코로나19 검사를 하고 있다. 환자 남편과 자녀 등 가족 2명은 음성으로 나왔다. 환자가 입원했던 새로난한방병원에는 33명이 입원해 있다. 이들은 대구의료원 등으로 이송할 계획이다.

질병관리본부는 17일 확진 판정을 받은 30번 환자(68·여)의 병원 이외 동선도 공개했다. 환자는 증상이 시작되기 전날인 5~7일 오전 서울 중구의 회사를 다녀왔다. 10일 오전 인천 용유도와 아라뱃길에 갔다온 뒤 오후 6시55분 서울 종로구 단골온누리약국을 방문했다. 13일 낮 12시에는 명륜진사갈비 서울동묘점, 스타벅스 동묘앞역점도 찾았다. 30번 환자와 접촉한 뒤 자가 격리에 들어간 사람은 20명이다. 방역당국은 29번과 30번 환자가 어디서 누구에게 감염됐는지 찾고 있지만 이틀째 이들의 동선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신용카드 사용 기록이 거의 없는 두 환자의 기억과 진술에 의존해 동선을 파악하고 있어서다.“정치적 판단으로 방역 그르쳐선 안 돼”

서울과 대구에서 잇달아 지역사회 감염 의심 환자가 발생하면서 지역 주민들의 걱정이 커졌다. 수성구 범어동에 사는 이창호 씨는 “해외 여행력이 없고 확진자와의 접촉도 없다는데 확진자가 계속 번지면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했다.

감염 경로를 찾지 못하는 환자가 잇달아 나왔지만 방역당국은 아직 지역사회에서 일상생활을 하면서 감염을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역학적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은 환자가 많이 나왔기 때문에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면서도 “지역사회 감염 위험 등을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의료계에서는 지역사회 감염 상황을 인정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가 정치적 부담 때문에 지역사회 감염을 인정하지 않으면 사태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할 위험이 높다고도 했다.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은 “환자가 발생할 때마다 하나하나 문을 닫고 격리하는 것은 언젠가는 멈춰야 한다”며 “상존하는 바이러스에 대비하는 수준으로 대응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계절마다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감염 질환이 될 가능성도 높다고 진단하고 있다. 지금은 호흡기 감염증 환자가 의료기관을 방문하면 독감 등 8개 바이러스 검사를 해 원인을 찾는다. 앞으로는 코로나19가 추가돼 아홉 번째 유행성 호흡기 바이러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무증상과 가벼운 증상으로 앓고 지나가는 환자가 늘면 집단면역이 생기고 그렇게 되면 가벼운 계절성 질환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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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대구=오경묵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