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잘못된 진단은 잘못된 정책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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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상승률 둔화 추세 맞지만우리나라 실질임금 상승률은 2000~2010년 연평균 2.2%였고, 2010년 이후 연평균 1.3%로 점차 둔화하고 있다. 이를 두고 기업이 임금을 상대적으로 적게 주고 과도한 이익을 남기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수년 전부터 학계 일각에서 제기됐다. 당시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외환위기 이후 실질임금 상승률이 실질노동생산성 증가율에 못 미친다는 통계와 전체 부가가치에서 노동자에게 배분되는 몫이 감소하고 있다는 통계가 제시됐다. 현 정부는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 소득배분을 시장에 맡겨두면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왜곡되므로 개입을 통해 이를 시정하고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 하에 정책을 운용해왔다. 이는 다수의 정책 관련 발표 자료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기업이 덜 줘서가 아니라
생산성 향상이 더뎌진 탓
계산상 오류 큰 통계에 근거
정부가 개입해 임금 올리기보다
노동생산성 높이는 데 힘써야
박정수 <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
문제는 정책의 핵심 근거가 된 두 통계에 중대한 계산상 착오가 있다는 점이다. 첫째, 실질임금과 실질노동생산성 간 괴리 현상은 두 지표를 실질화할 때 서로 다른 물가지수를 적용한 데 그 원인이 있다는 점이 발견됐다. 물가지수의 차이를 없애면 괴리가 사라지고 소득배분에 왜곡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흥미로운 점은 이와 비슷한 논쟁이 1990년대 미국에서도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에도 관찰된 괴리가 단지 물가지수 차이 때문이라는 점이 브루킹스연구소의 연구에 의해 밝혀지며 논쟁이 일단락됐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거시 국민계정 자료를 기초로 두 지표를 구성했을 때 명목기준에서도 괴리가 존재한다는 연구가 제시된 바 있으나, 이 괴리 역시 국민계정의 구성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계산상 착오에 불과하다.둘째, 노동소득비중(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 추세도 국민계정 구성에 대한 오해에 기인한 계산착오다. 국민경제의 생산주체는 법인과 자영업으로 구분되는데 착오의 핵심 원인은 자영업을 모두 1인 자영업으로 간주하고 노동소득비중을 계산한 데 있다. 통계청 ‘2015년 자영업현황 분석’에 따르면 등록사업자 중 1인 자영업자가 393만 명이고 고용주 자영업은 86만 명인데 여기에 고용된 피고용인은 무려 336만 명에 달한다. 이처럼 자영업 부문에도 임금근로자가 다수 존재하는데 이를 간과하면 자영업 부문에서 발생하는 임금 부분이 자영업 부가가치 계산에서 빠져 노동소득비중 계산에 상당한 왜곡을 준다.
최근 한국경제학회 학회지인 ‘한국경제포럼’에 발표된 필자의 연구에서는 실제 노동소득비중의 변화가 없어도 고용주 자영업의 생산비중이 줄어들수록 기존 방식으로 계산된 노동소득비중이 기계적으로 하락하는 왜곡이 발생한다는 점을 보여줬다. 자영업 부문의 구조를 적절히 반영해 다시 추정한 결과 1980년 이후 노동소득비중은 하락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개국의 평균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현 정부 정책기조의 근거가 된 주요 통계들이 사실과 다르고, 국민소득 중 노동자에게 배분되는 몫의 비율은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잘못된 진단을 근거로 취해진 정책들이 기업에 과도한 인건비 부담과 경쟁력 후퇴를 초래하고 수익성 낮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에게 큰 충격을 줬을 것이란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중소기업 영업이익률은 2016년 3.85%에서 2018년 3.45%로 하락했다. 고용원이 있는 고용주 자영업자 수는 2019년 11만6000명 감소해 외환위기 이후 최대 감소폭을 보인 반면, 꾸준히 하락하던 1인 자영업자 수는 9만7000명 증가해 자영업이 생존을 위해 규모를 줄이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임금 상승은 분명 둔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기업이 부당하게 덜 줘서가 아니라 생산성 향상이 둔화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 상황에서 임금을 높이려면 개입을 통한 임금 인상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생산성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결론에 이른다.
추격형 경제에서 벗어나 선진국과 치열한 경쟁에 직면해 있는 우리나라에 필요한 생산성 제고는 혁신적이고 대체하기 어려운 차별화된 제품과 서비스를 끊임없이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생존을 위해 국가 차원의 혁신 역량 업그레이드를 위해 온 힘을 모아야 할 이때 잘못된 진단과 처방에 몸살을 앓고 방향을 잃은 한국 경제의 앞날이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