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통역' 샤론 최 "무대울렁증, 10초 명상으로 극복"

미국 연예매체 기고…"영화감독으로 내 목소리 내기 위해 배우고 있다"
"통역때 방광이 1시간 버텨주기를 기도"…"2월9일 기생충의 날로 정해도 놀라지 않아"
"봉 감독과 여행은 특권"…"외로움 덜 느끼기 위해 이야기꾼 되고 싶어"
봉준호 감독의 각종 수상 소감을 완벽하게 통역해 화제를 모은 최성재(샤론 최) 씨가 아카데미상 무대에 오르기까지 10개월에 걸친 여정을 직접 소개했다.최 씨는 18일(현지시간)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에 기고한 수기 형식의 글을 통해 '봉준호의 입'으로 활약하며 느꼈던 경험과 소회, 영화감독 지망생으로서 앞으로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최 씨는 "지난 6개월은 내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허니레몬티의 끝없는 주문과 함께 한 시간이었다"며 "이제 앞으로 내가 쓸 각본은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나의 진심과 밀접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그는 "이제 남은 일은 나 자신과 영화 언어 사이를 통역하는 것"이라며 "사고의 유연함이 기생충을 현재의 위치로 이끌었고, 공감을 만들어냈다. 내가 이야기꾼이 되고자 하는 이유는 덜 외로움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고백했다.하지만, 꿈의 무대 오스카에 서기까지 남다른 고충도 많았다고 밝혔다.

그는 "가면 증후군과 싸웠고, 대중에게 사랑받는 사람의 말을 잘못 전달할 수 있다는 불안감과 싸워야 했다"며 "무대 공포증에 대한 유일한 치유법은 무대 뒤에서 10초간 명상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영화학도로 영화감독 지망생인 그는 "이번 여행은 특권일 뿐이었다. 높이 뛰어오르기 위해 산소탱크가 필요했다"며 "감독으로서 내 목소리를 내기 위해 나는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최 씨는 봉 감독 못지않게 스타덤에 올랐지만, 정말 예기치 않게 '봉준호의 입'이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4월 첫 번째 통역 의뢰는 단편영화 각본 작업 때문에 놓쳤지만, 두 번째 통역 의뢰를 기꺼이 수락하고선 "(통역할 때) 화장실에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방광이 한 시간가량 버텨주기를 기도했다"며 당시의 벅찬 감정을 회고했다.

그는 봉 감독 통역 일을 하기 전 경력이라곤 이창동 감독과 함께 했던 일주일에 불과했다는 점도 얘기했다.2018년 10월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북미 시장에 진출했을 때 샤론 최가 통역을 했던 동영상은 지금도 소셜미디어에서 '완벽 통역'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최 씨는 초등학교 시절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근교에서 2년을 살았고, 미국의 한 대학에서 영화예술 미디어학을 전공했다.

그는 "어린 시절 미국에서 2년을 보내면서 나는 이상한 하이브리드가 됐다"며 "너무 한국인다워서 미국인이 될 수 없었고, 너무 미국인 같아서 한국인이 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영어 실력을 유지했지만, LA에서 대학을 다닐 때 무심하게 듣는 '왓츠업'(What's up?)이라는 말에도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씨는 봉 감독의 통역 일이 "모든 장벽을 깨트린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가 됐다"고 묘사했다.

그는 "통역을 할 때 회상에 잠길 시간은 없다"며 "통역은 현재 존재하는 순간에 관한 모든 것이고, 다음 순간을 위해 (이전의) 기억을 지워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불면증을 달래고 동서양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봤던 영화들과 봉 감독의 명확한 달변이 통역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도 했다.

최 씨는 자신의 유명세에 대해선 유쾌한 농담으로 받아넘겼다.그는 "소셜미디어 피드에서 내 얼굴을 보는 것이 너무 이상했고, 비아그라 광고를 위한 해시태그에 내 이름을 넣은 트윗을 발견하기도 했다"면서 "한국 정부가 2월 9일을 기생충의 날로 선포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