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법정스님 10주기 추모법회…생전 미공개 사진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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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의 철학을 설파했던 법정스님 10주기를 맞아 서울 성북구에 있는 사찰 길상사(吉祥寺)에서 추모 법회가 봉행됐다.
법정스님은 무소유를 한평생 실천하고 가르친 수행승이었다. 그는 "무소유는 단순히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을 뜻한다"며 생명 중심의 나눔의 삶을 강조했다.
법정스님의 뜻을 이어온 ㈔'맑고 향기롭게'와 길상사는 이날 불교계 인사와 신도 등 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법정 대종사 10주기 추모 법회'를 거행했다.
범종 소리 속에 시작한 추모 법회는 삼배와 헌화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법정스님이 2006년 남긴 봄 정기 법문 말씀 장면을 담은 영상을 보며 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법회 참석자들은 열반 10주기 특별판으로 나온 저서 '스스로 행복하라'를 받기 위해 사찰 경내에 긴 줄을 늘어서기도 했다.
추모 법회와 함께 길상사에서는 법정스님의 생전 일상을 담은 미공개 사진 전시회가 열렸다. 다음 달 11일까지 이어지는 사진전에서는 스님이 차를 마시거나, 털모자를 쓴 스님의 얼굴, 입적 후 다비식 장면, 당시 기자들이 스님을 동행하며 취재하는 모습 등을 담은 사진 70점이 공개됐다.
이들 사진은 이종승, 유동영 씨 등 작가 7명이 송광사 불일암과 길상사 등에서 촬영해 보관하다 맑고향기롭게 측에 기증한 것이다.
이밖에 내달 8일 길상사에서는 스님 입적 10주년을 맞아 '법정스님을 그리는 맑고 향기로운 음악회'가 열린다. 11월까지 매월 네 번째 주 일요일 오전 11시∼오후 2시마다 명사 초청 좌담도 열린다.
맑고향기롭게에 따르면 법정스님은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났다.
1956년 효봉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1959년 자운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1960년 통도사에서 '불교사전' 편찬에 동참했고, 1967년 서울 봉은사에서 불교 경전을 하며 불교계 언론 등에서 필자로 이름을 알렸다.
그러다 1975년에는 제2인혁당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아 그해 10월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수행에 들어간다.
하지만 세상에 명성이 알려지며 사람들이 찾아오자 이를 피해 1992년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겨 홀로 수행한다.
무소유는 그를 대표하는 말이다.
길상사도 그의 무소유 책에 감동한 길상화 보살 고(故) 김영한 씨가 당시 자신이 운영하던 1천억원대 한식당 대원각을 시주해 사찰로 탈바꿈한 것이다. 스님은 말년에 폐암이 깊었고, 2010년 3월 11일(음력 1월 26일)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연합뉴스
법정스님은 무소유를 한평생 실천하고 가르친 수행승이었다. 그는 "무소유는 단순히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을 뜻한다"며 생명 중심의 나눔의 삶을 강조했다.
법정스님의 뜻을 이어온 ㈔'맑고 향기롭게'와 길상사는 이날 불교계 인사와 신도 등 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법정 대종사 10주기 추모 법회'를 거행했다.
범종 소리 속에 시작한 추모 법회는 삼배와 헌화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법정스님이 2006년 남긴 봄 정기 법문 말씀 장면을 담은 영상을 보며 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법회 참석자들은 열반 10주기 특별판으로 나온 저서 '스스로 행복하라'를 받기 위해 사찰 경내에 긴 줄을 늘어서기도 했다.
추모 법회와 함께 길상사에서는 법정스님의 생전 일상을 담은 미공개 사진 전시회가 열렸다. 다음 달 11일까지 이어지는 사진전에서는 스님이 차를 마시거나, 털모자를 쓴 스님의 얼굴, 입적 후 다비식 장면, 당시 기자들이 스님을 동행하며 취재하는 모습 등을 담은 사진 70점이 공개됐다.
이들 사진은 이종승, 유동영 씨 등 작가 7명이 송광사 불일암과 길상사 등에서 촬영해 보관하다 맑고향기롭게 측에 기증한 것이다.
이밖에 내달 8일 길상사에서는 스님 입적 10주년을 맞아 '법정스님을 그리는 맑고 향기로운 음악회'가 열린다. 11월까지 매월 네 번째 주 일요일 오전 11시∼오후 2시마다 명사 초청 좌담도 열린다.
맑고향기롭게에 따르면 법정스님은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났다.
1956년 효봉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1959년 자운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1960년 통도사에서 '불교사전' 편찬에 동참했고, 1967년 서울 봉은사에서 불교 경전을 하며 불교계 언론 등에서 필자로 이름을 알렸다.
그러다 1975년에는 제2인혁당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아 그해 10월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수행에 들어간다.
하지만 세상에 명성이 알려지며 사람들이 찾아오자 이를 피해 1992년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겨 홀로 수행한다.
무소유는 그를 대표하는 말이다.
길상사도 그의 무소유 책에 감동한 길상화 보살 고(故) 김영한 씨가 당시 자신이 운영하던 1천억원대 한식당 대원각을 시주해 사찰로 탈바꿈한 것이다. 스님은 말년에 폐암이 깊었고, 2010년 3월 11일(음력 1월 26일)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