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만큼 '신상털이' 두렵다"…확진자 정보공개 적정선은

온라인상에 확진자 신상정보 무차별 유포…"알 권리 넘어선 심각한 사생활 침해"
전문가 "공익성만큼 인권도 고려할 수 있어야 성숙한 사회"
주부 이정이(37)씨는 최근 감기 기운이 돌자 주 3회씩 카페에서 하던 아르바이트를 아예 그만뒀다. 행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이라도 받으면 인터넷에서 '신상털이'를 당할까 봐 우려됐기 때문이다.

이씨는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니 코로나19 확진자들의 동선이 공개되면 신상털이를 당하는 건 시간 문제더라"며 "혹시 감염되기라도 하면 '아이 키우는 엄마가 아르바이트하면서 바이러스를 전파했다'고 욕을 먹을 것 같아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병에 걸리고 싶어서 걸린 것도 아닐 텐데, 확진자들의 신분까지 무분별하게 노출되면서 환자가 아닌 죄인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24일 코로나19가 지역사회로 빠르게 확산함에 따라 보건당국은 확진 환자의 동선 정보를 상세히 공개하며 접촉자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동선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개인정보나 확진자 신상이 적힌 공문서 등이 유출돼 온라인으로 급속히 퍼지는 사례가 잇따라 사생활 침해 우려도 나온다.

직장인 주모(29)씨는 "요새 이직을 준비하느라 퇴근 후에 종로 인근에서 스터디를 하는데, 내가 감염되면 회사 사람들이 그 사실을 다 알게 되는 셈이라 필사적으로 위생관리에 신경 쓰고 있다"며 "코로나19 감염 자체보다 내가 어디에 가서 뭘 했는지 전 국민이 알게 된다는 게 더 불안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전북지역 한 확진자의 실명과 휴대전화 번호, 졸업앨범 사진까지 카카오톡을 통해 유포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댓글에는 "(지자체에서) 문자메시지로 확진자 정보를 너무 알려주더라. 청년이 적은 지역이다 보니 금방 신상이 털리겠다 싶었다", "범죄자도 아닌데 너무하지 않나", "이 정도면 국민의 알 권리를 넘어선 심각한 사생활 침해다"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민감한 개인정보가 원치 않게 노출된다는 점뿐 아니라 동선 공개에 따른 지나친 비난 여론도 문제가 되고 있다. 올해 1월 20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귀국한 3번째 확진자가 5일간 서울 강남과 경기도 일산 일대를 돌아다닌 것을 두고 SNS 등에서는 "민폐", "안이한 대처"라는 등 비난이 쏟아졌다.

해당 환자는 자신을 향한 악성 댓글에 시달리다 정신과 상담과 심리 안정제 투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취업준비생 여모(25)씨는 "확진자 동선을 보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비난하는 친구들이 많다"면서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나라도 '괜히 유난 떤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일상생활을 했을 것 같다"고 했다.

최근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이 전국 1천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자신의 코로나19 감염보다 확진자가 됐을 때 주변으로부터 받을 비난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지 중 상황별 두려움(5점 만점)을 묻는 문항에서 '내가 확진자가 됐을 때 주변으로부터 받을 비난·추가 피해'를 두려워하는 정도는 평균 3.52점이었다.

'무증상 감염되는 것'(3.17점), '증상이 있는데도 자가신고하지 않은 이가 주변에 있는 것'(3.1점) 등 감염 관련된 항목보다 점수가 높았다.

유 교수는 "결국 확진자에게 탓을 돌리고 비난하는 사회 분위기가 부메랑처럼 코로나19에 대한 불안을 가중한다"며 "감염병 상황에서는 '알 권리'라는 공익성과 인권이 충돌할 때가 잦은데, 그 사이에서 현명한 중간 지점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불필요한 사적 정보가 공개되는 것의 사회적 이득을 따져보고, 사생활과 인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질할 필요가 있다"며 "엄중한 시기이긴 하나 지금부터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대응책을 마련하는 게 성숙한 사회로 가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