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만세시위' 박망아 선생 등 106명 독립유공자 포상

일본서 독립 외친 여성 의학도 현덕신·친일파 처단 용사 4인 '건국훈장' 포상
국가보훈처는 제101주년 삼일절을 맞아 1919년 3월 경북 의성에서 초등학교 만세 시위를 주도한 박망아 선생 등 106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한다고 27일 밝혔다.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23명(애국장 9명, 애족장 14명), 건국포장 14명, 대통령 표창 69명이다.

포상자 중 생존 애국지사는 없으며 여성은 5명이다.

1902년 2월 24일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박망아 선생에게는 건국포장이 추서된다. 18세 때인 1919년 3월 경북 의성군 비안공립보통학교 4학년 재학 중 독립 만세운동 참여를 다른 학생들에게 권유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박망아 선생 등은 그해 3월 11일 비산시장에서 독립 만세운동을 하기로 결의했다.

하지만 사전에 정보를 입수한 일제 경찰이 비안시장 일대 경계를 강화해 시위는 무산됐다. 박망아 선생은 이에 굴하지 않고 만세 시위를 계속하기로 하고, 다음날 동료 학생들과 학교 뒷산에서 독립 만세운동을 했다.

보훈처는 박망아 선생이 주도한 만세운동은 10세 전후에 불과한 보통학교(오늘날 초등학교) 학생들이 일으킨 초유의 항쟁이라고 설명했다.

박망아 선생은 옥고 후유증으로 22세 때인 1924년 사망했다. 중국 남만주 일대에서 무장 독립운동을 펼치며 친일파를 응징하다 장렬히 순국한 4인의 용사인 최봉희·원승보·최준식·최학기 선생에게는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이들은 1921년 5월 중국 봉천성에서 독립단의 암살대원으로 친일파 김여연 등을 처단하다 체포돼 순국했다.

일본에서 독립 만세를 외친 여성 의학도 현덕신 선생에게는 건국포장이 추서된다.

1896년에 태어난 현덕신 선생은 이화학당을 졸업하고 일본에서 유학했다.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에 재학하면서 조선여자친목회 조직에 참여했다.

1920년 3월 1일 3·1운동 1주년을 맞아 동경 히비야 공원에서 동료 유학생 80여명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다 체포됐다.

귀국 후 의사로 활동하던 현덕신 선생은 1927년 항일여성운동단체 '근우회'가 결성되자 집행위원과 정치부 위원으로 활동했다.

광주에 병원을 개업한 뒤에는 근우회 광주지회 설립에 참여했다.

현덕신 선생은 1926년 동아일보 기자로 일제 식민통치를 비판하는 글을 게재했다가 재판에 회부된 최원순 선생의 부인이기도 하다.

이밖에 전남 담양에서 의병에 참여해 일본군과 전투 중 순국한 이강복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이, 3·1운동 직후 비밀 독립운동 단체에 참가해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한 김양한 선생에게 건국포장이 추서된다.
1949년 정부 포상이 시작된 이후 건국훈장 1만1천68명, 건국포장 1천331명, 대통령 표창 3천532명 총 1만5천931명(여성 477명)이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다. 국가보훈처는 "독립기념관, 국사편찬위원회, 국가기록원 등 유관기관과 사료 수집 등의 협업을 활성화할 것"이라며 "독립유공자 발굴·포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그분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드높이는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