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ㅣ박은빈 "'스토브리그' 어린 여성 팀장을 설득하기까지…"
입력
수정
SBS '스토브리그' 이세영 팀장 역 배우 박은빈로맨스가 없어도 충분히 빛났다.
20년 넘은 연기 노하우, 이세영으로 뽐내
"선은 네가 넘었어" 명장면까지
"이 멤버라면, 시즌2도 하고 싶어요."
1996년 모델로 데뷔해 1998년 SBS '백야 3.98'로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만 수십 편. 어릴 땐 주인공의 아역을 도맡아 했고, 성인이 된 후에도 주연으로 극을 이끌었다. 누가 봐도 베테랑이었고, 필모그라피를 탄탄하게 쌓아온 배우 박은빈이었다. 그런 박은빈에게도 최근 종영한 SBS '스토브리그'의 이세영은 도전이었다. ◆ 도전의 시작
'스토브리그'는 만년 꼴찌 프로야구팀 드림즈가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는 스토브리그를 보여준 작품이다. 박은빈이 연기했던 이세영은 국내 프로야구단 가운데 유일한 여성 운영팀장이며 동시에 최연소 운영팀장이라는 설정이었다.
'스토브리그'의 첫 회 시청률은 5.5%. 방영 전엔 일부 야구 팬들 사이에서 "비현실적"이라며 반감도 있었다. 그 반감의 요소 중에 '여성' 팀장 이세영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스토브리그'가 마지막 회에 19.1%까지 시청률이 치솟으며 고공 행진을 했듯, 박은빈도 탁월한 연기로 이세영을 설득시켜 나갔다. "초반엔 욕도 먹었어요. 선례를 찾아볼 수 없던 캐릭터였죠. 극의 리얼리티 부분에서 이세영이 뛰어넘어야 하는 관문이 분명 존재했어요. 남초 스포츠계에서 온몸으로 부딪혀서 악다구니로 버텨온 길을, 세영이 부셔야 했던 벽을 저도 함께 느끼면서 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애썼어요."◆ "선은 네가 넘었어!"
'스토브리그'에서 이세영을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명대사는 "선은 네가 없었어"였다. 연봉 인상을 무례하게 요구하며 백승수(남궁민)의 무릎에 양주를 붓는 손영주(차협)를 향해 이세영은 유리잔을 던진다. 이세영이 그동안 어떻게 생존해 왔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고, 이 방송이 나간 시간부터 시청자들은 이세영을 "사이다"라며 칭송했다. "그 장면이 변곡점이 됐어요. 인정받는 계기가 된 거 같아 스스로도 다행이라 느꼈어요. 이전까지 여성 캐릭터에서 보지 못한 부분들 때문에 낯설어서 거부감을 느끼셨던 분들도 그 부분부터 공감을 느끼시더라고요. 방송 전엔 '선수를 너무 막 대하는 게 아닌가', '위험한 행동 아닌가' 걱정도 됐는데, 차엽 배우가 얄밉게 연기를 잘해줘서 개연성을 살렸어요."
그 이후부터 이세영은 점점 변화하는 백승수와 드림즈를 시청자에게 친절하게 인도하는 안내자로 활약했다. 시청자들이 답답함을 느낄 부분에는 시원한 사이다 일침을 하고, 가려운 부분을 긁어줬다. 여기에 박은빈은 적절한 애드리브를 넣으며 이세영 캐릭터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손영주에게 '경솔한 새끼'라는 별명을 안긴 "예의를 술에 말아 쳐 드셨나, 경솔한 새끼"라는 대사도 박은빈의 애드리브였다.
"정동윤 PD님, 이신화 작가님 모두 깨어 있는 분들이지만, 서로의 입장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들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서 현실적인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어요. 저는 흘리면서 하는 얘기들도 귀 기울여 주시고, 그걸 꼭 반영해 주세요. 또 제가 애드리브를 하는 부분도 '자유롭게 하라'고 허락해주시고요. 고마웠어요."◆ 여성 캐릭터를 뛰어 넘은 이세영
오랫동안 연기했도, 여러 작품에서 많은 인물을 만나면서 박은빈 스스로 여성 캐릭터가 갖는 한계에 고민했었다. 특히 극은 남성 캐릭터들이 이끌고, 여성 캐릭터는 소품처럼 쓰이는 현실은 배우 본인에게도 유리천장이었다.
"남자 캐릭터는 해결사 적인 면모가 크게 주어지고, '쟤가 맞겠지', '이유가 있겠지' 쉽게 믿어주시는 거 같아요. 반명 여성 캐릭터는 비교적 그런 부분이 덜 주어지고요. 세영은 나름의 이성과 합리를 갖췄어요. 그런 논리적인 부분이 마음에 들었어요. 몇몇 작품에서는 말만 주체적이지 사실상 극의 전개를 위해 객기를 부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인물들이 있어요. 그렇게 당위성을 잃고 연기하면 힘들고, 슬프다는 걸 경험했거든요."
"야구를 잘 모른다"는 박은빈이 '스토브리그'를 택한 것도 이 부분 때문이었다. "대본을 읽었을 때 쉬운 전개로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캐릭터들이 주관을 잃지 않고 자립해서 뭔가를 해나가는 부분"이 박은빈의 마음을 움직인 것.
시놉시스, 초반 대본과 캐릭터가 달라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지만, '스토브리그'는 끝까지 색과 톤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감사한 작품"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 "시즌2, 이 멤버라면 하고 싶죠."
애정이 가는 작품이기에 시즌2를 묻는 질문에도 곧바로 긍정적인 답이 나왔다. 앞서 이신화 작가는 "20부의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준비가 됐을 때, 시즌2를 쓰겠다"면서 당분간 시즌2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스토브리그'에 아쉬움을 드러내며 시즌2를 요구하는 시청자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작가님은 완성도 높은 작품을 보이고 싶으시겠죠. 그냥 내보이고 싶진 않으실 테니. 그건 작가님이 알아서 하실 몫이고.(웃음) 저희끼리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단순히 시청률이 잘 나와서라기 보단, 모난 사람 없이 서로 한마음이 돼 진한 동료애와 우정을 나눴어요. 이 구성이라면 저도 또 한 번 추억을 남기고 싶어요."
종영 후에도 교류는 이어지고 있다. 출연 배우들끼리도 배역에 따라 '프론트방', '선수단방'으로 나눠 단체 채팅방을 운영하고 있다고. "제가 개인적인 밀린 업무들을 마무리하느라 포상 휴가를 가진 못했어요. 그래서 사이판 사진을 올려 달라고 프런트 방에 요청했더니 다들 많이 올려주시더라고요. 영상도 올려주시고요. 참, 저희 프론트 방에는 ('스토브리그'에선 비리 스카우터로 퇴출된) 고세혁 팀장(이준혁) 팀장님도 계세요. 드라마 밖에서도 이렇게 과몰입이네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