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논설실] "출근하지 마" 코로나가 바꾼 근로 형태…재택근무 확산

폐쇄된 을지로 SKT 타워 /연합뉴스
“창사 이래 처음이야. 사옥 폐쇄 걱정 때문에 회사 오지 말래.” “아침 저녁 1시간 이상 콩나물버스와 지옥철에 시달리지 않아서 좋긴 한데, 처음이어서 아직 얼떨떨해.”

최근 직장인들의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와 단체 카톡방에 오가는 내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재택근무를 도입하는 직장이 급속하게 늘고 있다. 기업들은 코로나19 위기 경보 단계가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격상된 지난 23일 이후 사내 감염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로 재택근무에 나섰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기업과 공기업들도 잇달아 도입하고 있다. 증시에서는 관련 주식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SK그룹은 지난 25일부터 SK㈜와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 E&S, SK네트웍스, SK실트론 등에서 필수 인력을 제외하고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현대·기아차는 27일부터 본사 등 서울 경기지역 근무자를 대상으로 자율적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현대모비스는 일반 직원들에게 절반씩 나눠 격일 재택근무를 하도록 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내달 6일까지 본사 근무자 전체가 자율 재택근무를 한다. LG상사와 롯데지주도 내달초까지 자택근무를 시행한다.

IT업계도 합류했다. 네이버는 필수 인력 외에 전 직원 원격근무 체제이고 카카오도 원격근무 중이다. 게임업계에서도 넥슨·넷마블·NHN·펄어비스·위메이드·컴투스 등이 재택근무 체제를 가동했다.

재택근무를 하는 기업에선 대부분의 소통을 사내외 메신저나 모바일로 하고 있다. 꼭 필요한 경우에는 화상회의도 한다. 어느 곳에서든 회사 업무를 할 수 있는 클라우드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다. 다만 중소기업계에서는 가상사설망(VPN) 등의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곳이 많아 당장 시작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기업들의 재택근무는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자구책이긴 하지만, 의도치 않게 유연한 근로형태의 효과를 알아볼 수 있는 실험장이 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다양한 근로 형태를 고민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 이번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재택근무 도입은 일종의 테스트베드와 같다”며 “앞으로 재택근무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일본 기업들이 최근 재택근무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자동차 회사 도요타는 2016년부터 재택근무제를 시작했다. 전체 직원의 30%에 해당하는 사무직·연구개발(R&D) 담당 기술직 등 2만5000명은 1주일에 2시간만 회사에 나오고 나머지는 집에서 일할 수 있다. 도요타 인사팀장은 “근무방식을 회사가 일률적으로 정하지 않고 팀·부서별로 개개인의 사정을 고려해 가장 효율적인 업무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후지쓰와 미쓰비시도쿄UFJ 등도 재택근무제를 도입했다. 미국과 유럽 근로자들 역시 4명 중 1명꼴로 사무실 밖에서 업무를 처리한다.

재택근무의 확산은 기술 발달 덕분에 더욱 앞당겨질 전망이다. 사무실 밖에서도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전자 결제, 화상회의 시스템 등 정보통신 기술이 날로 새로워지고 있다. 재택근무는 교통비·출장비 절감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아직은 일부 현장에서 혼선이 빚어지기도 하지만, 업계에서는 근로 형태의 거대한 변화가 시작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감염병 같은 위기가 때로는 근로 혁신 같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