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안에 흔한 대장균이 대장암 돌연변이 일으킨다"

유전자 독성 가진 대장균종, DNA 손상 화학물질 생성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연구진, '네이처'에 논문
많은 사람이 몸 안에 대장균(Escherichia coli bacteria)을 갖고 있다. 그런데 유전자 독성을 보이는 특정 대장균 종(strain)이, 대장암과 똑같은 패턴의 돌연변이를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 대장균 종이 대장암을 유발한다는 걸 시사하는 것이다.

체내 대장 등에 서식하는 대장균이 발암성 돌연변이를 일으킨다는 게 과학적으로 입증된 건 처음이다. 전체 인구의 10~20%는 장에 이 독성 대장균 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연구를 수행한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과학자들은 27일(현지시간) 이런 내용의 논문을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에 발표했다.

온라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인체 내에는 거의 세포 수만큼 많은 세균이 있지만, 대부분은 건강에 이로운 유익균이다. 질병을 일으키는 일부 유해균 중 대표적인 게 바로 유전자 독성을 가진 이 대장균 종이다.

이런 대장균은 인간 세포의 DNA를 손상하는 콜리백틴(colibactin)이라는 화학 물질을 생성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실 건강식품 등에 많이 쓰이는 대장균이 인체에 유해할까 하고 의심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위트레흐트대의 한스 클레버르스 분자 유전학 교수는 "지금도 독성 대장균이 든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이 판매되고 있고, 그중 일부는 임상시험에 쓰이기도 한다"라면서 "이런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이 단기적으로 몸의 불편함을 덜어줄지 모르지만, 수십 년 후에는 암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클레버르스 교수는 오가노이드(organoid·인공 미니 장기) 연구로 유명한 '휘브레흐트(Hubrecht) 발달 생물학·줄기세포 연구소(KNAW)'의 연구 책임자(PI)이기도 하다.

크레버르스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건강한 장 세포로 배양한 오가노이드를 5개월간 대장균에 노출한 뒤 염기서열을 분석해 어떤 유형의 돌연변이가 얼마만큼 생겼는지 살펴봤다.

여기에서 유전자 독성을 가진 대장균이 남기는 특유의 유전자 손상 패턴, 일명 '시그너처(signature)'를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흡연이나 자외선 노출 같이 널리 알려진 발암 원인(또는 발암 물질)은 각자 독특한 시그너처를 나타내는데, 암을 일으키는 시그너처를 알면 원인 진단과 치료 전략 수립에 큰 도움이 된다.

이 대장균 종은 두 개의 동시 발생(co-occurring) 돌연변이를 만드는 거로 나타났다.

DNA 코드를 구성하는 4개의 염기, 즉 아데닌(A)·구아닌(G)·시토신(C)·티민(T) 가운데 'A'가 다른 어느 하나로 변이하고, 아울러 'A'가 길게 반복되는 부분에서 'A' 하나가 누락되는 패턴이었다.

대장균이 만드는 콜리백틴은 두 개의 'A'를 동시에 묶거나 교차 결합하는 데 직접 작용했다.

연구팀은 이어 수십 종의 암에서 생긴 5천여 개 종양 돌연변이를 분석해, 5%가 넘는 대장암 종양에서 대장균 시그너처가 높게 나타난다는 걸 발견했다.

대장균에 노출될 수 있는 구강, 방광 등에 생긴 몇몇 다른 암에서도 대장균 시그너처가 나타났으나 그 비율은 0.1% 미만이었다. 클레버르스 교수는 "유전자 독성을 가진 대장균 종에 대해 비판적인 실험실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라면서 개인적으로는 보균 검사받는 게 좋다고 권고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