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읊조릴수록 울분 치미는 식민지 민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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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차영의 유행가 '시대의 하모니'자신이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를 ‘18번 곡’이라고 한다. 1910년대 러시아 가수가 일본 공연을 할 때 18번째 부른 노래에서 유래했다.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가면 대통령 네 분의 묘소가 있다. 그분들이 생전 즐겨 부르던 18번 노래는 ‘희망가’ ‘짝사랑’ ‘목포의 눈물’ ‘선구자(용정의 노래)’ 등이다. 이승만·박정희·김대중·김영삼 대통령의 애창곡들이다. 이 중 ‘짝사랑’ 노래 앞에는 전주곡처럼 대사가 먼저 나온다. ‘그님 못 잊어 찾아 왔어요/ 그님 생각에 저물었어요/ 외로운 들국화 날리는 저녁/ 강물을 바라보고 앉았노라면 눈물이 땀에 번집니다….’
(3) 고복수의 짝사랑
박영호 작사·손목인 작곡·1936년 발표
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 젖은 이즈러진 조각달/ 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멥니다/(1절)이 노래는 1939년 35세의 고복수가 오케레코드사 전속가수로 불렀다. 그는 광복 이전에는 만주 등지를 순회 공연했고, 광복 후 백조악극단원으로 활약했다. 이 곡에는 서글픈 비장의 서정이 흐른다. 일본 제국주의 치하 식민지 백성들의 허망한 일상이 노래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1930년대는 일본 제국주의가 만주사변(1931)과 중일전쟁(1937)의 야욕을 불태우며 우리나라를 군국주의 폭풍 속으로 내몰았다. 강제징용·창씨개명·신사참배·조선육군징집령·근로정신대·종군위안부…. 곱씹어 생각할수록 울분이 치민다.
고복수는 황금심과 결혼한 우리나라 최초의 부부 가수다. 연예계에서 스캔들 없이 살아온 잉꼬부부이기도 했다. ‘알뜰한 당신’의 주인공 황금심은 언니를 따라 부민관에 구경하러 갔다가 무대가수에게 매료돼 축음기로 노래를 배우던 중 오케레코드사 제작부장의 눈에 띄었다. 부민관은 조선총독부 부립 건물로 1935년 완공됐다. 지금의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125(태평로1가)에 강당과 사교실 등 편의시설을 갖춘 건물이었다. 집회, 연극, 강연회 등을 열 수 있었다. 광복 후 국회의사당, 세종문화회관 별관을 거쳐 현재는 서울시의회 의사당 및 사무처로 사용되고 있다.
황금심의 즉석 오디션이 오케레코드사 사무실에서 열릴 때 심사위원은 사장 이철, 작곡가 손목인·박시춘, 가수 고복수였다. 특등으로 통과됐다. 고복수는 1972년 식도염과 고혈압으로 사망했는데, 이봉조·김세레나·신카나리아·신성일 등 연예인들이 ‘타향살이’를 고별곡으로 불렀다. 당시 장송곡을 부른 신성일(강신성일·1937~2018)도 영원한 타향살이 길을 떠났다. 울긋불긋한 오색단풍이 자꾸 말을 걸어오던 2018년 가을날에.인생은 들녘에 떨고 있는 들국화를 짝사랑하다 떠나가는 짝사랑의 길이다. 이 노래 가사 중 ‘으악새’는 왜가리의 다른 이름이다. 웍새, 왁새로 흐름을 거쳐 으악새가 된 여름철새다. 호주에서 3월에 날아왔다가 10월에 돌아간다. 이 노래는 작사가가 김능인 또는 박영호로 표기될 때가 있다. 김능인이라고 표기된 이유는 박영호가 6·25전쟁 때 월북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당시 월북 작가들 작품은 금지곡이 됐으므로 다른 이름으로 발표됐다.
유차영 < 한국콜마 전무이사·여주아카데미 운영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