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비운의 '실크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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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는 교역품만 아니라 전염병도 전파했다. 14세기에 인류 최악의 참사를 초래한 페스트(흑사병)도 그중 하나다. 페스트균은 원정에 나선 몽골군과 상인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 중앙아시아·인도·유럽으로 번졌다.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었다. 4억7000만 명 정도였던 세계 인구는 약 3억5000만 명으로 줄었고, 이전 수준까지 회복하는 데 200여 년이 걸렸다.
그때 상황을 기록한 문서를 보면, 흑해 연안 크림반도에 있는 항구도시 카파에 페스트가 퍼지자 이탈리아 상인들은 대규모 선단을 이끌고 지중해를 거쳐 제노바로 철수했다. 이 과정에서 배 12척에 탄 선원 대부분이 사망했다. 페스트의 숙주인 쥐벼룩과 균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다. 사람들은 병의 원인과 치료법도 모른 채 죽어갔다.이에 앞서 6~8세기에 이집트와 동로마제국이 페스트에 휩쓸린 적이 있다. 동로마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만 하루 평균 5000여 명씩 쓰러졌다. 그 바람에 도시 인구가 40% 아래로 줄었다. 학계에서는 이때와 14세기 페스트균이 모두 실크로드를 따라 전파된 것으로 보고 있다. 아일랜드 코크대 연구진은 페스트균의 유전자 변이 분석 결과 “둘 다 중국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19세기 프랑스 화학자 루이 파스퇴르가 치료법을 개발했지만 페스트는 아직 완전히 박멸되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페스트로 2014년에 3명, 2016년과 2017년에 각각 1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말에도 4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이들에 대한 정보가 늦게 공개돼 온갖 괴담이 나돌았다.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병 때 당국이 보안에 급급하다 사태를 키운 것과 닮았다.
현대의 전염병은 하루도 안 돼 지구 반대편까지 확산될 수 있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유럽 20여 개국으로 번지는 데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이탈리아 확진자는 1000명을 넘었다. 각국은 감염원 차단과 검역 강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의 이동과 교역이 위축되고 있다.실크로드는 한때 부(富)와 패권의 상징이었다. 세계의 절반을 지배한 몽골제국의 힘도 이 길에서 나왔다. 그러나 페스트로 사람과 물자의 흐름이 끊기면서 제국은 쇠퇴했다. 실크로드뿐만 아니다. 세상의 모든 길은 열릴 땐 문이 되지만 닫힐 땐 벽이 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그때 상황을 기록한 문서를 보면, 흑해 연안 크림반도에 있는 항구도시 카파에 페스트가 퍼지자 이탈리아 상인들은 대규모 선단을 이끌고 지중해를 거쳐 제노바로 철수했다. 이 과정에서 배 12척에 탄 선원 대부분이 사망했다. 페스트의 숙주인 쥐벼룩과 균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다. 사람들은 병의 원인과 치료법도 모른 채 죽어갔다.이에 앞서 6~8세기에 이집트와 동로마제국이 페스트에 휩쓸린 적이 있다. 동로마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만 하루 평균 5000여 명씩 쓰러졌다. 그 바람에 도시 인구가 40% 아래로 줄었다. 학계에서는 이때와 14세기 페스트균이 모두 실크로드를 따라 전파된 것으로 보고 있다. 아일랜드 코크대 연구진은 페스트균의 유전자 변이 분석 결과 “둘 다 중국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19세기 프랑스 화학자 루이 파스퇴르가 치료법을 개발했지만 페스트는 아직 완전히 박멸되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페스트로 2014년에 3명, 2016년과 2017년에 각각 1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말에도 4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이들에 대한 정보가 늦게 공개돼 온갖 괴담이 나돌았다.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병 때 당국이 보안에 급급하다 사태를 키운 것과 닮았다.
현대의 전염병은 하루도 안 돼 지구 반대편까지 확산될 수 있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유럽 20여 개국으로 번지는 데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이탈리아 확진자는 1000명을 넘었다. 각국은 감염원 차단과 검역 강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의 이동과 교역이 위축되고 있다.실크로드는 한때 부(富)와 패권의 상징이었다. 세계의 절반을 지배한 몽골제국의 힘도 이 길에서 나왔다. 그러나 페스트로 사람과 물자의 흐름이 끊기면서 제국은 쇠퇴했다. 실크로드뿐만 아니다. 세상의 모든 길은 열릴 땐 문이 되지만 닫힐 땐 벽이 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