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진원' 사우디, 코로나19 확산엔 '청정'(종합)

중동 코로나19 중심지 이란과 4년 전 단교로 인적교류 적어
원유 수출비중 90% 산업 구조 특수성…외부와 과감히 차단가능
5년 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처음 발병해 가장 많은 감염자와 사망자를 낸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는 '청정 지대'를 유지하고 있다. 중동 지역에서는 1월 29일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처음 코로나19 확진자(우한에서 입국한 중국인 가족)가 발생한 것을 시작으로 이란을 중심으로 인근 중동 국가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라크, 쿠웨이트, 바레인 등 중동 여러 나라에서 처음 확진자가 확인된 지난달 24일 이후 2일까지 한 주간 이 지역에서 확진자는 86명에서 1천167명으로 무려 14배로 늘었다.

하지만 사우디만은 여전히 확진자가 보고되지 않았다. 걸프 지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지 않은 곳은 내전 중이어서 전염 검사가 이뤄지지 않는 에멘을 제외하면 사우디뿐이다.

전문가들은 사우디가 중동에서 코로나19의 '진원'으로 지목되는 이란과 2016년 1월 정치·종교적 갈등으로 단교해 1년에 한 번 있는 정기 성지순례(하지) 외에는 인적 교류가 거의 없다는 점을 그 이유로 우선 꼽는다.

아울러 사우디는 지난해 9월 관광 비자를 처음 발급하기 시작했지만 비자 정책이 매우 엄격해 여전히 외국인이 입국하기 까다롭다. 또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바이러스 전염병을 통제할 수 있는 방역, 의료 수준이 다른 중동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도 사우디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지 않는 이유라는 분석도 있다.

사우디는 중동에서 코로나19가 급속히 번지자 지난달 27일 전격적으로 이슬람 최고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 비정기 성지순례를 위한 외국인 입국을 중단했다.

또 자국민뿐 아니라 자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에 대해서도 이란 입국을 금지했다. 관광 비자도 한국, 중국, 이탈리아, 일본, 이란 등과 같이 코로나19가 심각한 나라뿐 아니라 감염자가 모두 완쾌했다고 발표한 베트남 등 발병 사례가 보고된 22개국을 대상으로 일시적으로 발급을 전면 중단했다.

이어 1일 코로나19 유입에 대비해 의료용 마스크, 방호복, 검사 장비를 상업 목적으로 국외로 반출하지 못하도록 했다.

사우디 보건부는 1일 "현재 코로나19 환자는 없지만 25개 병원을 전담 시설로 지정하고 8천개 병상을 확보했다"라며 "의심 증상을 보이는 290여명을 검사했지만 모두 음성으로 판정됐다"라고 밝혔다.

1월 말 사우디에 거주하는 인도인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고 인도 정부가 주장했지만 사우디 당국은 메르스 감염자였다고 부인했다.

사우디가 코로나19 유입을 막기 위해 이렇게 과감하고 강력하게 외부와 단절하는 방법을 쓸 수 있는 것은 '독점성' 때문이다.

사우디는 세계 최대의 원유 수출국으로 수출금액의 90%를 원유와 석유제품이 차지해 산업 구조가 단순하고 국영기업이 민간 부문을 압도한다.

비록 코로나19 탓에 국제 원유 가격이 떨어져 손해가 예상되지만 한국, 중국 등 주요 거래처가 에너지 수입을 중단할 일은 없고 독과점 형태인 원유 시장은 다른 산유국과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편이다.

원재료를 수입해 가공한 뒤 이를 수출해야 하는 한국, 일본 등과 달리 외부와 인적·물적 교류를 상당히 제한해도 자생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지난해 9월까지 관광 비자를 외국인에게 발급하지 않을 만큼 폐쇄적이었지만 대체 불가한 이슬람 성지 메카, 메디나를 보유한 덕분에 적극적으로 관광객을 유치하지 않아도 매년 전 세계에서 성지순례객 500만명이 앞다퉈 사우디를 찾는다. 외국인을 최대한 유치해 관광, 부동산, 물류 산업으로 경제를 유지해야 하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가 한국, 중국, 이탈리아, 이란 등 코로나19 집중 발병국에서 오는 입국자를 전면 금지하지 않는 것과는 정반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