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골프 WHO] 한국인 7번째 PGA 투어 챔프 꿈 이룬 임성재 누구

'강점=두둑한 배짱과, 정교한 샷, 단점=아쉬운 뒷심.'

임성재(22·대한통운)를 따라다니던 수식어는 늘 '결정력 부족'이란 비평을 받던 여느 남자 한국 선수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계 최강 골퍼들이 집결한 미국프로골프(PGA)투어의 정글법칙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꼭 필요한 마무리 '클러치'가 아쉬웠다. 결정적 한 방이 좀체 터지지 않았다.그렇게 49개의 대회가 지나갔다. "우승은 시간문제"라던 목소리가 서서히 잦아들 무렵, 임성재가 마지막 퍼즐을 기어이 끼워맞췄다. 2일 미국 플로리다 팜비치 가든 PGA 챔피언코스에서 끝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혼다클래식(총상금 700만달러)을 6언더파 274타로 마쳐 생애 첫 우승을 신고했다. 우승상금 126만달러(약 15억2000만원). 2018년 6월 US오픈으로 '빅무대'에 얼굴은 내민 지 딱 50번째 대회만에 챔프의 꿈을 이뤘다. 한국인 선수로는 최경주(8승), 양용은(2승),배상문(2승),김시우(2승),노승렬(1승),강성훈(1승)에 이어 7번째 PGA챔프가 된 것이다. 한국 전체로는 17번째 트로피의 주인공이 됐다.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1998년 태어난 임성재는 양용은(48), 강성훈(33)과 같은 제주출신이다. 6세 때부터 골프채를 잡아 한라초등학교, 계광중학교(충남 천안), 천안고, 한국체대를 거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16세이던 2014년 국가대표를 지내며 특급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고는 2015년 한국프로골프투어(KPGA) 프로 시험 예선, 본선을 모두 1위로 통과한 뒤 곧바로 2부투어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차세대 유망주로 싹을 틔웠다.

그는 18세이던 2016년 KPGA코리안투어는 물론 일본투어(JGTO)에도 도전장을 던졌다. 한국 투어의 경우 아마추어이던 2013년부터 포함하면 총 15차례 대회에 출전해 지난해 10월 제네시스오픈에서 첫승을 올렸다. 일본에서도 우승은 없었지만 '톱10'에 자주 이름을 올리는 등 존재감을 뽐냈다.미국 무대를 노크한 때는 2017년. "실패하더라도 큰 물에서 놀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던 그였다. 시작부터 감이 좋았다. 그해말 치른 웹닷컴 투어(2부투어) Q스쿨에서 2위를 차지한 것이다.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웹닷컴투어는 그에게 좁았다. 데뷔 무대부터 제패하더니, 두 번째 대회에서도 2위를 차지하며 쾌속행진을 거듭했다. 임성재는 이후 '최초'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2018 웹닷컴 투어 최고상인 '올해의 선수상'을 한국 선수 최초로 수상했다. 웹닷컴에서는 역대 최연소 수상자라는 기록도 남겼다. 결국 시즌 내내 상금 랭킹 1위를 지킨 최초의 선수라는 기록까지 세우며 PGA투어 정규투어 시드를 거머쥐었다. 꿈에 그리던 PGA투어 챔피언의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PGA투어에 입성한 첫 시즌에 그는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인 최초로 '신인상'을 받는 새 지평을 열어 제쳤다.
PGA투어는 1990년 신인상 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한 선수가 웹닷컴 투어와 PGA 투어 신인상을 잇달아 받은 건 1997년 스튜어트 싱크(미국)에 이후 22년 만이다.'무관의 신인왕'이란 타이틀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아놀드파머인비테이셔널 3위 등 '톱 10'에 일곱차례 이름을 올리는 등 부침없는 경기력으로 많은 팬들의 믿음을 샀다. 전문가들이 "우승문이 열리고 있다"고 본 배경이다. 그해 그는 루키 중에는 유일하게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최종전인 투어 챔피언십에 진출했고, 공동 19위로 시즌을 마치며 이런 믿음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이번 첫승도 "예견됐다"는 평이 많다. 꾸준함이 가능케했다. 이번 대회에 앞서 12개 대회에 출전한 그는 딱 한 번 커트탈락(제네시스인비테이셔널)을 빼고는 모두 본선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는 준우승(2019년 9월 샌더슨팜스챔피언십) 한 번, 공동 3위(2019년 10월 조조챔피언십) 한 번을 기록하는 등 톱10에 세 번 이름을 올리며 챔프의 길로 한 발 한 발 발을 내디뎠다. 임성재는 "샌더슨팜스 때 연장 패배가 쓴 약이 됐다"고 말했다.

임성재는 연습벌레로도 유명하다.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휘어 굳어질 정도로 채를 휘두르고 휘둘렀다. 샷을 하기 전 어드레스에서 한 번 무릎을 굽히며 자세를 가다듬는 루틴과 느린 백스윙이 특징인 그는 이번 대회에 앞서 퍼팅루틴을 살짝 바꿔 효험을 봤다. 스트로크를 하기 전 '포워드프레스(그립을 타깃쪽으로 살짝 보냈다가 스트로크를 시작하는 것)'를 채택한 것이다. 볼의 구름을 안정적으로 만들어주는 루틴으로 꼽힌다.그는 이번 대회에서 드라이브 평균 비거리 291.3야드(40위)를 기록했다. 그리 멀리 치진 않았다. 하지만 드라이브 정확도 10위, 그린 적중률 3위, 샌드세이브율 3위, 스크램블링(그린 주변에서 어프로치로 파 이상을 잡는 능력)이 3위에 오르는 등 티에서부터 그린까지 공략하는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퍼팅보다 정확한 샷으로 승부한 것인데, 이게 까다로운 챔피언스 코스에서 먹혔다.

수많은 베테랑과 챔피언들을 돌려세운 '악마의 베어트랩(15~17번홀)'은 일단 그린에 무사히 올리는 게 승부처라는 말을 들을정도로 코스공략이 까다로웠다. 그는 최종일 이홀들에서 버디 2개를 잡아냈다.

혼다클래식은 2009년 양용은이 타이거 우즈(미국)을 꺾고 PGA투어 첫승을 올린 대회라는 점도 의미가 특별하다. 이 대회로 자신감을 얻은 양용은은 얼마안 가 타이거 우즈를 메이저 대회에서 다시 한 번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