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세 노린 집주인의 황당 요구…"나도 함께 전입신고 해달라"

부동산 프리즘
“동거인으로 전입신고를 같이 해달라고요?”

직장인 박모씨(29)는 지난달 초 서울 응암동의 한 아파트 전셋집을 구하다 집주인에게 황당한 요구를 받았다. 전입신고를 할 때 집주인 이름을 동거인으로 올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집주인은 전입신고를 함께하면 전세보증금을 1000만원 깎아준다고 했다. 사회초년생인 그는 불안한 마음에 계약을 접고 다른 전셋집을 구하고 있다. 박모씨는 “최근 전셋집 열 군데를 돌아다녔는데 그중 집주인 절반이 전입신고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 전세시장에서 집주인의 위장전입 사례가 늘고 있다. 정부 대책에 따라 양도세 비과세 요건에 실거주 요건이 강화되면서 ‘꼼수 전입’으로 세금을 아끼기 위해서다. 현장조사 외에 이 같은 편법을 적발할 길이 없어 정부 감시가 소홀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도세 절세를 위한 집주인의 위장전입 사례는 다양하다. 집주인이 동거인(세대원)으로 전입신고를 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집주인들은 전세 신규 계약이나 재계약할 때 이 같은 조건을 내건다. 대신 집주인은 전세보증금을 시세보다 일부 낮춰준다. 일부 집주인은 조건을 거부하면 “다른 세입자를 구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한다. 세입자의 전입신고를 아예 못하게 하는 집주인도 있다. 실거주는 세입자가 하되 전입신고는 집주인이 하는 식이다. 신혼집을 구하고 있는 직장인 윤모씨(31)는 “중개업소까지 나서 위장전입 조건이 달린 전세 매물을 소개한 적도 있다”고 했다.집주인 위장전입은 양도세 절세를 위한 편법이다. 정부는 2017년 ‘8·2 대책’에서 1가구 1주택자도 2년 이상 거주해야 양도세를 면제받게 했다. 2018년 ‘9·13 대책’에서는 장기보유특별공제 요건에 2년 실거주 요건이 추가됐다. 지난해 ‘12·16 대책’은 거주 기간 1년마다 8% 깎아주던 양도세를 보유분 4%, 거주분 4%로 나눴다.

실거주 여부에 따라 양도세는 수천만원까지 차이 난다. 10년 보유, 5년 거주한 집을 팔아 양도차익 10억원을 얻었다면, 양도세가 2273만원에서 6325만원으로 늘어난다. 우병탁 신한은행 팀장은 “정부 정책 변화로 양도세 비과세 요건이 까다로워지면서 최근 실거주 관련 절세 문의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전세 매물이 품귀를 빚는 탓에 세입자들은 마지못해 집주인 요구를 따르는 분위기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160.8이다. 균형 상태면 100, 수치가 높을수록 공급 부족을 뜻한다. 서울 아현동 J공인 관계자는 “요즘처럼 전세 매물이 귀한 상황에서는 세입자들이 집주인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위장전입은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최대 징역 3년 이하다. 하지만 실제 처벌받는 경우는 드물다. 정충진 법무법인 열린 변호사는 “전입신고할 때마다 일일이 현장조사를 나갈 주민센터 인력이 부족한 탓에 적발이 쉽지 않다”고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재 집주인을 위장전입(주민등록법 위반) 외에 처벌할 방법은 없다”며 “임대차 신고 의무화 법률 개정안이 입법되면 집주인과 중개인 처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