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 던파·피파온라인…손 대는 게임마다 성공 '17년 넥슨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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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탐구작년 8월 국내 1위 게임업체 넥슨코리아는 크게 술렁거렸다. 8년 동안 600억원 이상의 개발비를 투입한 게임 ‘페리아연대기’의 개발이 중단되면서다. 게임 이용자를 만족시키기에는 부족하다는 판단에 내린 결단이었다. 안 그래도 사내 분위기는 넥슨의 매각 취소로 뒤숭숭한 상황이었다. 넥슨 창업자인 김정주 NXC(넥슨의 지주회사) 대표는 지난해 초 회사를 매물로 내놨지만 6월에 매각이 불발했다. 넥슨은 재정비에 들어갔다. PC 온라인과 모바일로 나뉘어 있던 사업조직을 통합했다. 게임 ‘제노 프로젝트’ 개발을 중단했고, 게임 전시회 지스타에서 공개했던 ‘프로젝트 DH’도 포기했다. 불안한 넥슨 직원들은 거리로 나왔다. 9월 3일 넥슨 노동조합 ‘스타팅포인트’ 조합원들은 경기 성남시의 넥슨코리아 본사 앞에서 국내 게임업계 처음으로 장외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고용 안정을 보장하라”고 외쳤다.
"하나를 만들어도 제대로"
600억 쓴 프로젝트 접기도
넥슨을 되살린 힘은 소통
10년 넘은 게임도 인기 역주행
말단서 CEO 오른 비개발자 출신
소통 강화로 위기 극복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가 직접 나섰다. 이 대표는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넥슨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가치는 사람에게 있다”며 “어떤 결정에서도 넥슨이 성장하기까지 함께 땀 흘리며 가장 큰 원동력이 돼준 직원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규 게임 개발 중단이 계속될 수 있다고도 알렸다. 관련 업무를 맡았던 수백 명의 직원이 대기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다른 프로젝트에 대부분 투입됐다. 회사의 인위적인 조치로 회사를 나간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흔들리던 넥슨코리아는 다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넥슨의 지난해 국내 매출은 22% 증가했다.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작년 4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57%나 매출이 늘었다. 2018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한 넥슨코리아는 지난해 흑자로 전환하면서 부활했다.
이 대표는 누구보다도 넥슨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넥슨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2003년 입사해 15년 뒤인 2018년 최고경영자(CEO)까지 올랐다. 넥슨의 핵심 게임 지식재산권(IP)으로 자리 잡은 ‘바람의 나라’ ‘카트라이더’ ‘던전앤파이터’ ‘피파온라인’ 등의 성장에 기여했다. 다양한 프로젝트와 업무를 맡았던 이 대표는 넥슨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직원들이 흔들리지 않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지난해 넥슨 매각 이슈가 터지자 이 대표는 모든 대외 활동을 멈췄다. 대신 직원들을 개인별로 만나 의견을 들었다. 넥슨의 강점, 문제점, 해결방안 등을 두루 경청했다. 조직개편 방향과 신규 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도 직원들에게서 얻었다.공개적인 소통도 늘렸다. 지난해 11월에는 사내 게시판을 통해 주요 수익원인 중국 매출이 줄어든 사실과 신규 프로젝트 개발의 추가 중단 계획을 알렸다. 12월에는 넥슨코리아의 손자회사 넥슨레드, 자회사 불리언게임즈가 넥슨코리아와 합병한다는 소식을 직접 전했다. 이전 넥슨에선 보기 힘든 CEO의 메시지 전달 방식이었다. 이 대표는 “지금은 넥슨의 생존과 성장을 위한 전환이 반드시 필요한 시기”라며 “(회사와 직원 간) 신뢰의 회복에서 전환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넥슨의 강점을 극대화
이 대표는 직원과의 소통을 통해 ‘선택과 집중’의 방향성을 잡았다. 기존 게임 유통과 신규 게임 개발 중단에 따른 유휴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우선 기존 인기 게임에 집중했다. 이 대표는 올해 1월 신년사를 통해 “세계적으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온라인 게임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유지한 회사는 드물다”며 “10년 넘게 성장한 복수의 프로젝트(게임)를 보유한 회사는 넥슨이 유일하다”고 설명했다.이 대표는 넥슨 조직의 강점도 극대화했다. 그는 게임 하나에 관련된 모든 직원이 일사불란하게 한 팀처럼 움직이는 것을 넥슨의 장점이라고 판단했다. 예를 들어 오전 회의에서 결정된 게임 내 이벤트 등 추가 콘텐츠 계획을 당일 실행에 옮겼다. 게이머의 이용 행태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모든 직무의 담당자들이 빠른 속도만큼 양질의 콘텐츠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게임 운영 방식을 국내 게임업계에서 넥슨이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이 대표의 생각이다.
이는 실제 성과로 이어졌다. 넥슨은 지난해 출시된 지 16년째가 된 PC 게임 ‘메이플스토리’에 신규 콘텐츠를 추가해 매출을 1년 전보다 39% 늘렸다. 인기 축구 게임 ‘피파 온라인4’는 PC와 모바일에서 모두 이용 편의성을 높여 지난해 역대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2004년에 나온 레이싱 게임 ‘카트라이더’는 관련 e스포츠대회를 강화해 다시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PC방 인기 순위에서 밀려났던 카트라이더는 최근 4위까지 오르며 ‘역주행’했다.
올해는 ‘초격차’로 승부수이 대표가 올해 신년사에서 ‘존경’을 강조한 것도 직원들의 팀워크를 독려하기 위해서다. 대학에서 광고홍보학을 공부한 이 대표는 비개발자 출신인 게임사 CEO다. 이 대표는 입사 후 게임 기획, 개발,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의 직원을 존중하고 배우면서 성장했다고 말한다. 게임 기획에서 개발, 유통까지 게임산업의 모든 과정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존중이 필수다. 그는 “직원들의 직무가 다양하지만 서로 관심을 갖고 존중할 때 게임 이용자에게 완벽한 게임 경험을 제공하자는 단 하나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초격차’도 최근 이 대표가 사내에서 강조하는 키워드다. 초격차는 경쟁자가 쫓아올 수 없을 정도로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그는 “넥슨이 가진 라이브 서비스(기존 게임 유통) 역량에 투자를 확대해 ‘초격차’를 이루겠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인기 게임 IP를 발굴하는 것도 이 대표의 과제다. 넥슨은 지난해 11월 내놓은 모바일 게임 ‘V4’ 외에는 신규 게임들의 성적이 좋지 않다. 이 대표는 “새로운 IP 확보를 위해 그동안 넥슨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수백 명의 개발자를 투입하는 대작 신규 프로젝트에 도전할 예정”이라며 “게임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기회를 찾는 작업도 꾸준히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1979년 서울 출생
△2003년 넥슨코리아 입사
△2006년 넥슨코리아 퍼블리싱QM팀 팀장
△2010년 네오플 조종실 실장
△2012년 넥슨코리아 피파실 실장
△2014년 넥슨코리아 사업본부 본부장
△2015년 넥슨코리아 사업총괄 부사장
△2018년 1월~ 넥슨코리아 대표이사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