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논설실] '누가 더 못났나' 경쟁…코로나보다 심각한 망언 바이러스

사진=연합뉴스
어릴 적 할머니께선 TV 뉴스를 볼 때 연신 "참 못났다"고 하셨습니다. 고관대작의 부정부패, 파렴치한, 분노 유발자들이 등장할 때마다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입니다. 요즘 코로나 사태에서도 참 많은 이들이 서로 '누가 더 못났나' 경쟁을 하는 듯합니다. 국민은 마스크 구하느라 몇시간씩 줄을 서고, 행여 서로 마음에 상처를 줄까봐 조심하는데 '관심받고 싶은 사람들'은 오늘도 대중에게서 잊혀질까봐 숟가락을 얹습니다.

그런 점에서 작가 공지영을 빼놓을 수 없죠. 페이스북에 지역별 코로나 현황 그래프를 올리면서 야당 단체장이 있는 대구·경북을 겨냥한 듯 "투표 잘합시다"고 썼습니다. 단 6글자로 본인의 정신세계를 다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은 기네스북에 오를 만 합니다. 헤밍웨이가 썼다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여섯 단어 소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팝니다. 아기 신발, 한번도 안 신었어요.)"은 깊은 울림을 줬지만, 공씨의 6글자는 뭐라고 봐야 할까요. 딸림화음처럼 진중권의 독설("드뎌 미쳤다")를 듣고도 어제 또 한마디 했습니다. "현재 코로나19 상황도 박근혜 정부였다면 더욱 엉뚱한 국면으로 가서 희생자가 더 많았을 거라 확신한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난형난제입니다. 코로나 방역에 정신 없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향해 "우한 코로나를 열심히 막을 생각이 없지 않느냐는 의심이 든다"고 했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대구시장과 경북지사) 두사람은 보수정당 소속이다. 책임을 중앙정부에 떠넘겨야 총선을 앞두고 TK 주민들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지 않겠냐"고 막말을 퍼부었습니다. 아무말이나 하면서 역시 정치에 중독된 본인의 실체를 또한번 드러냈다는 평을 듣습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겨울에는 모기가 없다" "(코로나 확산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돌아온 한국인이었다"고 한 말은 국민의 귀를 의심케 했습니다. '이 사람이 정말 한국의 장관이 맞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한국은 방역이 잘 돼서 입국자를 막을 필요 없다"고 했지만 한국에서 출발한 사람들에 대한 입국 금지·제한 국가(지역)는 80곳을 넘겼습니다. 그 나라들은 방역 후진국이어서 그런가요? '여권 파워 세계 3위'라던 한국 여권을 들고 제한 없이 갈 수 있는 나라가 점점 줄어듭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전국 초중고가 보유한 마스크 580만개를 수거해 일반인에게 보급하는 것을 대책이라고 내놨습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소상공인을 언급하며 울먹였습니다. 그동안 추락할 대로 추락하게 만든 경제정책 책임자의 눈물이 소상공인들에게 어떻게 비칠까요. 장관들의 일하는 방식이 대개 이런가 봅니다.

여당도 오십보백보입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이 '대구경북 봉쇄' 발언으로 사퇴한 뒤 좀 잠잠해지나 싶더니 이해찬 대표가 "마스크 한 개로 사흘씩 쓰는데 큰 지장 없다"고 했습니다. 마스크 사려고 하루 몇시간씩 줄을 서고도 번번이 허탕치는 국민들을 보면서도 생각이 없는 건지, 공감능력 결여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와중에 여당 실세들은 비밀회합에서 비례정당으로 선거 이길 궁리하는데 바빴습니다.(왜 야당은 언급하지 않느냐고요? 국정책임은 당연히 국민이 뽑아준 정부·여당에게 있으니까요.)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의 어제 기자회견에서 벌어진 각종 해프닝도 눈쌀을 찌푸리게 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교주라는 사람이 절을 두 번 한 것, '짝퉁'으로 추정되는 박근혜 시계를 굳이 차고나온 것, 끝난 뒤 '엄지 척' 한 것 등은 참 희한해 보인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이런 교주의 검체를 채취한다고 한밤중에 방송카메라 대동하고 신천지 본부를 급습하는 활극을 연출한 이재명 경기지사나, 변호사 출신이어서 안 될 걸 뻔히 알 텐데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라고 고발 퍼포먼스를 한 박원순 서울시장도 있습니다. '전염병 정치'로 존재감을 부각하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당연합니다.

이 와중에 북한 김정은이 빠지면 섭섭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남북 보건협력'을 제안한 다음날 미사일(또는 초대형방사포) 두 방을 쐈습니다. 북한도 코로나 의심환자들이 적지 않다는데 '한반도 주인은 나' '너나 잘 하세요'라고 허세를 부리는 듯합니다. 자꾸 메르스 때와 비교해 지금 대처를 잘 한다고 알리고 싶은 문 대통령으로선 머쓱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페이스북에는 누군가 만든 연예인 26명의 사진이 돕니다. 메르스나 탄핵 때는 그토록 사회에 분노한다던 이들이 지금은 아무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중에 코로나 관련 기부를 한 사람은 너무 유명해진 대구 출신 영화감독 한 명 뿐입니다. 이들은 앞으로도 계속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게 정의가 아니라 그때그때 다른 강남좌파식 허세라는 게 누군가의 촌평입니다. 대구에 100만원을 기부한 한 남자 배우에게 '고작 그거냐'고 비난한 이들, 젊은 여배우가 '코로나 잘 이기자'고 쓴 인스타그램 글에 '재앙'이란 단어를 썼다고 댓글 폭력을 가한 이들, 트와이스의 대만 출신 멤버 쯔위가 한국에만 기부했다고 난리친 중국 네티즌들…. 다들 참 못났습니다.

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는데는 60년이 걸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못해 입길에 오르는 이들이 제대로 된 리더일 수는 없겠죠. 하긴 침묵으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분도 한 분 계시네요. 주중 대사로.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람들의 진면목까지 드러내니 참 열 일을 합니다.

아침 뉴스에 국민과 전 언론이 신뢰하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의 얘기가 나왔더군요. "방역당국이 고생한다고 조명해주시는 것은 감사하다. 하지만 개인에게 관심이 쏠리거나 미담으로 포장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사람의 품격이란 이런 게 아닐까요?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