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옥중정치'로 통합당 힘싣기…"보수표 결집"vs"중도이탈"

보수통합에 "보수 외연 확대 위해 불가피"…'태극기'에 통합당 중심 단결 호소
자유공화당 등으로 보수표 분산 제어효과…'배신의 정치' 유승민 '수용' 해석도
안철수 등 중도층은 "부적절 메시지" 반발…범진보 '비례연합정당' 힘 실을 수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4일 보수진영의 결집을 호소하는 메시지를 던졌다.4·15 총선을 42일 앞두고 진영 대결 양상으로 흐르는 정치권에 박 전 대통령의 '옥중 서신'은 정치적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자유공화당을 비롯한 '태극기 세력'으로의 보수 표 분산이 이뤄지지 않도록 하는 효과가 예상되지만, 사실상 '야권연대'를 수용한 국민의당이 반발하는 등 중도층의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고 범 진보진영을 다시금 결속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할 소지도 있다.

◇ 탄핵이후 3년만의 '옥중서신'…통합당으로의 보수우파 단결 촉구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국회 정론관에서 자신의 친필 편지를 공개했다.박 전 대통령이 정치권을 향해 공식적 메시지를 보낸 것은 2017년 3월31일 구속 수감된 이후 처음이다.



편지는 "국민 여러분 박근혜입니다"로 시작했다.박 전 대통령은 "나라가 매우 어렵다.

서로 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메우기 힘든 간극도 있겠지만,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기존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여러분 모두 하나로 힘을 합쳐주실 것을 호소드린다"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기존 거대 야당'은 미래통합당을 가리킨다.새누리당 후신인 자유한국당과 탄핵 사태 이후 당을 나간 유승민 의원 등이 주축이 된 새로운보수당이 다시 손을 잡고, '안철수계'를 비롯한 중도 성향 인사들까지 합류한 통합당이 보수우파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통합당을 중심으로 힘을 합쳐달라고 박 전 대통령이 호소한 대상은 '태극기를 들었던 여러분', 즉 탄핵 국면에서 생겨난 '태극기 세력' 또는 '광화문 광장 세력'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원내 정당으로는 우리공화당과 자유통일당이 합친 자유공화당, 그리고 친박신당이 있다.

유 변호사는 기자들에게 "(자유통일당과 우리공화당의 통합 소식을) 박 전 대통령이 알고 계시다"고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가 발표된 즉시 자유공화당은 "통합당 등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고, 친박신당도 환영의 뜻을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에서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통합당의 설립 과정에 대한 언급이다.

그는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이합집산을 하는 것 같은 거대 야당의 모습에 실망도 하였지만, 보수의 외연을 확대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른 이합집산'은 자신에 대한 탄핵 국면에서 새누리당이 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쪼개졌고, 이후 바른정당이 안철수 전 의원의 국민의당과 합쳐 바른미래당을 만든 뒤, 다시 새보수당으로 갈라져 나와 한국당과 합친 과정을 의미한다.
탄핵에 찬성하면서 새누리당을 탈당했다가 다시 합류하는 모습에 '실망'을 했지만, 이를 보수의 외연 확대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받아들였다는 박 전 대통령의 언급은, 결국 자신과 정치적 대척점에 섰던 유승민 의원을 염두에 둔 메시지로도 읽힐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유 의원을 '배신의 정치'라고 비판한 바 있다.

유 의원의 새보수당과 손잡고 만들어진 통합당을 '보수진영의 본산'으로 인정함으로써 과거 탄핵에 찬성했던 인사들에 여전히 적대적인 태극기·광장 세력도 일단 통합당으로 결집해달라는 주문인 셈이다.

박 전 대통령은 그 이유로 "많은 분이 무능하고, 위선적이며, 독선적인 현 집권세력으로 인해 점점 더 힘들어졌다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호소를 하였다"는 점을 들었다.

자신의 탄핵 등을 둘러싼 '차이'나 '간극'을 드러낸 채 반목을 거듭하는 것 보다 40여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문재인 정권에 맞설 '반문연대' 전선을 구축하는 게 절실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는 특히 "서로 분열하지 말고, 역사와 국민 앞에서 하나 된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며 "여러분의 애국심이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저도 하나가 된 여러분과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태극기 세력을 향해 '분열 말라'는 메시지를 주는 동시에 통합당 중심의 보수 결집에 자신도 힘을 싣겠다는 의지를 거듭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전 대통령은 "2006년 테러(면도칼 테러)를 당한 이후, 저의 삶은 덤으로 사는 것이고, 그 삶은 이 나라에 바친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특히 대구·경북(TK) 지역에서 4천명 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발생하였고, 앞으로 더 많은 확진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하니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부디 잘 견디어 이겨내시기를 바란다"며 자신의 정치적 모태인 TK에 대한 걱정을 표현했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의 편지를 발표하고 나서 기자들에게 "많은 고심을 하셨던 것으로 안다"며 "특별하게 어떤 (발표) 시점을 선택한 건 아닌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유일하게 접견하는 인사다.

이번 편지는 박 전 대통령이 수감된 서울구치소의 정식 절차를 밟아 반출됐으며, 유 변호사는 이를 구치소 사무실에서 받아 국회로 가져와 발표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 총선 영향 촉각…"보수 표분산 억제" vs "중도표심에 악재"
박 전 대통령은 이미 정치를 떠난 인물로 인식돼왔으나, 여전히 보수진영에서 상징적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메시지가 총선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칠 지에 관심이 쏠린다.

현재는 자신이 편지에 쓴 대로 "탄핵과 구속으로 정치 여정은 멈추었다"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날 서신을 두고 박 전 대통령이 옥중에서 총선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선언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에 따라 앞으로 총선 국면에서 통합당으로서는 상당한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태극기 세력의 정치적 대표를 자임하는 자유공화당이나 친박신당 등으로 표가 분산되는 것을 억제하는데 크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선거는 이기고 봐야 한다는 게 박 전 대통령 메시지의 핵심"이라며 "'물갈이'에 반발하는 대구·경북(TK)과 친박(친박근혜)을 향한 경고 효과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현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선거는 '문재인 중간평가'인데, 박 전 대통령 메시지는 선택지를 하나로 모아준 것"이라며 "보수 야권의 득표력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수감 중인 '탄핵 대통령'의 총선을 겨냥한 정치적 행보로 범진보진영의 결속력이 강화될 소지가 있고, 중도층 표심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당장 중도 노선을 표방하는 국민의당의 이승훈 대변인은 "박 전 대통령은 부적절한 정치적 발언을 지양하고, 국민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논평했다.

이 대변인은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를 '부적절하다'고 규정하고서 "코로나19 대처 과정에서 무능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려던 합리적 중도와 개혁적 보수, 이 정권에 실망하고 분노하는 양심적 진보층의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민의당은 안철수 대표가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기로 하면서 사실상 '야권 연대'를 수용한 상태지만, 박 전 대통령의 호소대로 통합당을 중심으로 뭉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통합당내 몇몇 비박(비박근혜)계 인사들 사이에서도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가 당의 우경화를 촉진하거나, '도로 친박(친박근혜)당'이라는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통합당 입장에서 상당한 악재가 될 것"이라며 "옛 한국당 지지층 내부의 극우, 강경 보수를 결합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친박을 청산하고 그 자리에 중도를 앉혀야 하는데 중도층은 가다가도 돌아설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옥중 메시지를 보고서 통합당을 뽑겠나"라고 전망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박 대통령 불쌍하다'며 친박들이 모여들 수도 있지만, '통합당이 좀 달라졌구나'라고 생각하던 중도층은 멈칫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범진보진영 내부의 결속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진보진영 내부에서 찬반 논란이 뜨거운 이슈인 '비례 연합정당' 창당에 상당한 힘과 명분을 제공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박 전 대통령의 '보수결집' 메시지가 진보·개혁진영의 합심을 유도하는 촉매제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