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훈 회장, 글로벌 인맥의 '민간 외교관' 외국 훈장 9개…88올림픽 유치

'민족 잘살게 하겠다' 신념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오른쪽)와 조양호 한진그룹 2대 회장. 대한항공 제공
고(故) 조중훈 회장이 창업한 한진(韓進)그룹은 ‘한민족(韓民族)의 전진(前進)’이란 말의 앞뒤 글자를 딴 것이다. 우리 민족을 잘살게 하겠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조 창업주가 많은 업종 중에서 운수업을 택한 것도 회사 이름과 맥을 같이한다. ‘교통과 수송은 혈관처럼 정치·경제·문화·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기간산업’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 국가의 산업화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수송보국(輸送報國)’의 철학이다.

조 창업주의 이런 철학은 사업 이외 다양한 분야에서도 수차례 드러났다. 외국과 교류가 많은 항공업 특성상 이를 통해 얻은 국제적인 인맥을 활용해 민간 외교관 역할을 자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이 첫 올림픽 개최권을 따낸 1981년. 조 창업주는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IOC) 총회가 열리는 독일 바덴바덴으로 날아갔다. 프랑스를 비롯해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의 국가들은 서울이 아니라 경쟁 후보지인 일본 나고야를 밀고 있었다. 조 창업주는 나고야를 지지하는 국가 소속 IOC 위원들을 집중적으로 만나 설득에 나섰고, 이들이 돌아서면서 서울이 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조 창업주는 프랑스와 외교 관계 개선이라는 국익을 위해 당시 막 개발된 에어버스 항공기를 6대 구입하는 결단을 내렸다. 프랑스 정부는 한·프랑스 양국 간 우호 협력에 기여한 공로로 조 창업주에게 모두 네 차례에 걸쳐 훈장을 수여했다. 1990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외국 국가원수들에게 최고 예우로 수여하는 훈장 ‘레종도뇌르 그랑 오피시에’를 받았다.

조 창업주는 20여 년간 프랑스 외에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몽골 정부로부터 9개의 훈장을 받았다. 특히 몽골엔 1992년 아무 조건 없이 B727 항공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 공로로 조 창업주는 몽골 정부로부터 최고 등급인 북극성 훈장을 받았다.

황창학 전 (주)한진 부회장은 “조 창업주는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곤 했다”고 회고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