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차털기] 차를 믿고 밟아라…포르쉐 718 박스터 G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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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성 기자의 [신차털기] 37회주위에 무수한 차들이 있었지만, 낮게 그릉대는 배기음은 도로 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알려줬다. 주변의 무수한 소리와 조화를 이루던 배기음은 때때로 거칠게 터지며 존재감을 더 알렸다.
△ 포르쉐 718 박스터 GTS 시승기
▽ 도심에선 정숙하고 세련된 패션카
▽ 교외에선 야성 드러낸 경주용 머신
▽ '현실적 드림카' 8.9km/L 공인연비
포르쉐 718 박스터 GTS는 도로 위에서 항상 위용을 뽐냈다. 주행 모드에 따라 높은 빌딩숲과 잘 어울리게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미남이 됐다가도 이내 넥타이를 풀고 야수로 돌변해 거친 매력을 발산하는 차량이었다.포르쉐코리아는 지난 2018년 4월 718 박스터 GTS를 국내 출시했다. 약 2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박스터의 외관은 여느 차량과 비교해도 아쉬울 것이 없었다. 포르쉐 특유의 탐스럽고 빨간 색상은 여전히 세련됐고 유려한 곡선은 예술품을 연상시킨다.
사실 박스터는 여러 지적을 받는다. 6기통이 아닌 4기통 엔진을 달았으며, 예전같은 날카로운 배기음을 들려주지 못한다. 출시로부터 2년 가량 지난 만큼 실내 인테리어는 구세대 차량의 느낌도 물씬 올라온다. 디스플레이는 작은데다 하단에 위치해 잘 보이지 않는다. 한 박자 느린 반응속도도 불편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박스터에는 최근 출시되는 차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나 어라운드뷰 등의 기능도 없다. 레벨2를 넘어 레벨3에 근접하고 있는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의 반자율주행 기능도 기대해선 안된다. 여러 IT 기능을 선호하는 기자의 취향과 1억2000만원에 가까운 가격대를 감안할 때 그다지 유쾌한 모습은 아니다. 되레 질책할 부분이다.그럼에도 시동을 켜고 주행을 시작한 순간부터 이러한 문제는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됐다. 소프트탑을 개방해 차가운 바람과 그릉대는 배기음을 느끼며 달리기 시작하자 차를 탄다는 단순한 일상이 순식간에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포르쉐가 가진 마성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포츠카라고 하지만 일반 주행모드에서는 데일리카로 쓰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승차감을 제공했다. 배기음도 주변에서 소음으로 느낄 정도로 시끄럽지 않았다. 다소 세련된 도심형 데일리 스포츠카 정도로 평가할 수 있었다. 다만 고속도로에 올라 주행 모드를 스포츠 모드로 바꾸자 풍절음과 배기음이 운전석을 가득 채우며 이전과는 다른 경주용 차로 변화했다. 지금 달리는 길이 고속도로가 아닌 서킷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박스터는 최고출력 365마력과 최대 토크 43.8㎏.m.의 힘을 뿜어낸다.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4.3초. 그럼에도 운전하기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박스터는 운전이 어렵지 않은 차다. 스포츠카 마니아에게는 아쉽겠지만, 일반적인 운전 실력으로도 안전하게 다룰 수 있는 차량이라는 점은 분명한 장점이다. 지난해 포르쉐 월드 로드쇼에서 신형 992를 포함해 포르쉐가 생산하는 모든 차량을 서킷에서 몰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992를 주행하며 한껏 긴장했던 기억이 있다. 운전면허를 따고 12년 동안 적지 않은 운전 경험을 쌓아왔지만, 992를 모는 내내 성난 야생마 위에 불안하게 메달려있는 느낌이 들었던 탓이다.
992는 발끝에 약간의 힘만 줘도 서킷을 박차며 나갔고 핸들의 감각도 다른 차에 비해 날카로웠다. 다음으로 파나메라를 운전했을 때도 다소 불안감을 숨기기 어려웠고, 가속 페달을 시원하게 밟지 못하는 기자에게 인스트럭터는 "차를 믿고 밟으라"며 채찍질했다.
박스터를 타고서야 내 차를 탄 것처럼 편안함을 느끼며 공격적인 주행을 할 수 있었다. 992와 비교해 주행 성능이 크게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박스터만큼은 편안한 운전이 가능했다.흔히 박스터를 '현실적인 드림카'라고 부른다. 운전이 편하면서도 도심 주행에 적합한 정숙함과 서킷을 달리는 듯 공격적인 성능을 동시에 갖췄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8.9km/L의 공인연비와 세금도 스포츠카라는 특수성을 생각하면 꽤나 합리적이다.
물론 박봉인 기자 월급으로 박스터를 구매하는 일은 여전히 비현실적이다. 계속 마음 속에 품으며 로또라도 당첨된 이후를 기약하려 한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