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 보고 중간에 끊고 질책…화난 신동빈, 롯데 체질개선 채찍 들었다

구체적 비전 제시도

작년 말 유통부문 문책성 인사
"말로는 디지털화 외치면서
오프라인 중심 생각 못 벗어나"
“사업할 의지가 있는 것입니까.”

롯데그룹의 한 임원은 최근 신동빈 회장에게 보고하던 도중 이런 ‘질책’을 받았다. 몇 년째 특정한 사업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에 대한 질책이었다. 또 다른 임원 보고를 듣고는 “말로만 잘할 것이란 얘기는 그만하라”고 하기도 했다. 임원 보고를 받던 도중 말을 끊고 질문을 던지는 일도 많아졌다. 롯데 한 임원은 “회장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고 전했다. 신 회장이 달라졌다.
질책 통해 조직에 긴장감 불어 넣어

신 회장은 ‘부드러운 카리스마형 리더’ ‘경청하는 경영자’로 통했다. 임원 말을 많이 듣고, 감정 표현을 절제하는 스타일이었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한 부친인 신격호 명예회장과는 다르다는 평가를 들었다.

작년부터 변화의 조짐이 감지됐다. 여간해선 질책하는 일이 없던 신 회장이 임원들에게 큰 소리를 내는 빈도가 높아졌다. 신 회장은 지난 1월 ‘밸류크리에이션미팅(VCM·옛 사장단회의)’에서 이런 말도 했다. “명예회장님께 보고할 때 저는 공포심까지 느꼈습니다. 지금은 회장 보고 때 그렇지 않죠?” 이 말을 들은 사장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신 회장이 이렇게 변한 데는 이유가 있다. ‘전략’만 세워놓고 막상 ‘실행’ 시기를 놓쳐 유통거인에 어울리지 않게 존재감이 없는 온라인 사업을 보면 알 수 있다.

신 회장은 2014년 일찌감치 방향을 직접 제시했다. 온라인 쇼핑과 오프라인 매장을 통합한 ‘옴니채널’이었다.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백화점 마트 편의점에서 물건을 찾아가는, 오프라인 인프라를 활용해 온라인 시장을 이끌자는 얘기였다. “옴니채널을 통해 트렌드를 앞서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쿠팡 설립 초기였다. 6년이 지난 현재 롯데는 쿠팡 등에 치여 위기를 맞고 있다.

신 회장은 작년 말 그룹 인사 때 백화점, 슈퍼, e커머스(전자상거래) 등 주요 부문 대표를 경질했다. 문책성 인사였다. 그는 최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말로는 디지털화를 외치면서 오프라인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당시 인사 배경을 설명했다.적극적으로 비전 제시하기도

신 회장은 과거 임원들 보고를 대부분 ‘수용’하는 편이었지만 요즘은 아니다. 자신이 이루고 싶은 목표를 먼저 제시하곤 한다. 그가 니혼게이자이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중심인 호텔 사업을 세계로 확장하겠다”며 “적극적으로 인수합병(M&A)에 나서 롯데호텔 객실 수를 5년 후에 3만 실로 늘리겠다”고 밝힌 것도 그런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롯데호텔 객실은 현재 국내외 30여 곳을 통틀어 1만400실 정도. 5년 안에 세 배로 늘리겠다는 공격적인 목표를 공개했다. 롯데호텔의 원래 사업계획에는 없는 내용이다. 향후 5년간 롯데호텔의 글로벌 확장 전략이 신 회장으로부터 시작된 셈이다.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는 것도 신 회장이 과거와 달라진 부분이다.그는 2015년부터 형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 선임과 해임을 놓고 여섯 차례나 ‘표대결’을 했다. 이 대결에서 최종 승리한 그는 “경영권 분쟁은 끝났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례적으로 경쟁자를 거론하는 일도 있었다. 쿠팡을 향해 “해마다 1000억엔 이상 적자를 내도 주주로부터 보전을 받는 회사와 경쟁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말했다. 한 해 1조원 이상 대규모 손실을 내는 쿠팡을 평가절하하고, 롯데의 온라인 사업은 쿠팡과는 다르게 해서 성공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