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마스크 수출 금지 확산…WHO "의료공급망 붕괴 우려"

獨·佛 앞다퉈 의약품 수출 제한
美, 조만간 수출 규제 나설 수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로 퍼지면서 마스크를 비롯한 의료용품 수출을 제한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 대만 인도에 이어 한국 독일 프랑스 등도 마스크 수출을 금지했다. 자국에서도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코로나19로 인해 세계에서 신(新)보호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글로벌 의료공급망이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보건부 장관은 7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코로나19 공동 대응을 위한 긴급 회동을 했다. 로이터와 AF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서는 일부 회원국의 마스크 등 각종 의료장비 수출 금지조치에 대한 격렬한 토론이 오갔다.EU 행정부인 집행위원회는 일부 회원국이 의료물품 수출 금지조치를 해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U 전역에서 마스크 등 의료물품이 제한 없이 사용돼야 한다는 것이 집행위의 요구다.

EU를 이끄는 양대 축인 독일과 프랑스는 회의에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옌스 슈판 독일 보건부 장관은 “우리는 다른 국가와 상황이 다르다”고 일축했다. 마스크가 절대 부족하다는 얘기다. 체코도 기존에 밝힌 수출 금지조치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프랑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마스크를 통제하겠다고 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달 초부터 EU 회원국에 마스크를 비롯한 의료물품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지원 의사를 밝힌 국가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유랙티브닷컴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하나의 유럽을 추구하는 EU의 결속과 연대가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고 분석했다.미국은 독일과 프랑스 등 주요 국가의 의료물품 수출 금지조치를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은 지난 5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국가 안보를 위해 글로벌 의료공급망 의존도를 줄이고 독립성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의료공급망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향후 수출 금지조치를 배제하지 않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미국과 유럽 등 세계 대부분 국가는 의료물품 원재료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이 마스크와 원재료 수출을 금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중국 생산량이 줄면서 의료물품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선 대다수 국민이 마스크를 쓰지 않지만, 공급 부족 현상이 장기화하면서 의료진 마스크조차 부족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 현지 언론의 지적이다. FT는 “세계 각국의 의료물품 수출 금지가 보호주의 열풍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 각국의 의료물품 수출 금지가 글로벌 의료공급망을 붕괴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각국 정부가 의약품 수출과 유통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