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러시아 '석유 전쟁' 최대 패자는 美 셰일업계
입력
수정
지면A12
유가 30달러 밑으로 떨어지면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간 ‘석유 전쟁’의 패자가 미국 셰일오일업계가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재정난을 겪고 있는 셰일업체들이 유가가 배럴당 30달러 밑으로 떨어지면 줄줄이 파산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미국이 세계 1위 산유국 위치를 잃어버릴 가능성도 커졌다.
'자금난' 업체 줄파산 직면
美 산유국 1위 위상 뺏길수도
9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셰일업체 옥시덴탈페트롤리엄의 주가는 하루 만에 52.01% 추락했으며 다이아몬드백에너지는 47%, 컨티넨털리소시스가 40% 떨어졌다. 이날 S&P 에너지섹터는 20.08% 하락했다. 지난해 쉐브론과 경쟁해 셰일업체 아나다코를 380억달러에 인수한 옥시덴탈은 이날 시가총액이 110억달러로 급감했다.이날 서부텍사스원유(WTI)는 배럴당 10.15달러(24.6%) 폭락한 31.13달러에 마감했고, 브렌트유는 배럴당 10.91달러(24.1%) 떨어진 34.36달러를 기록했다. 장중 둘 다 30% 넘게 추락하기도 했다. 러시아와의 감산 논의가 결렬된 뒤 사우디가 증산에 나선 여파다.
제이슨 발도프 컬럼비아대 교수는 “사우디와 러시아 간 석유 전쟁에서 가장 큰 패자는 미국 셰일산업이 될 수 있다”며 “배럴당 30달러 정도의 유가가 이어진다면 많은 셰일업체가 파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셰일업계는 유가 폭락 이전부터 재정 어려움에 직면해왔다. 2014년 세계적 증산 경쟁이 벌어졌을 때는 투자자들이 수천억달러를 투자해 셰일업계를 구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수년간 셰일업계의 낮은 수익률에 지친 월가는 지금 도와줄 의향이 없다”고 지적했다. WSJ가 조사한 29개 셰일기업은 지난 10년간 매출보다 지출이 1120억달러 많았다.게다가 그동안 발행한 회사채의 만기가 다가오고 있다. 무디스에 따르면 향후 4년간 미국 에너지 기업들은 860억달러의 부채를 갚아야 한다. 이날 에너지 기업들의 회사채가 폭락한 이유다. 스콧 셰필드 파이어니어내추럴리소시스 최고경영자(CEO)는 “아마 석유가스 기업의 50%는 2년 사이에 파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셰일기업들은 비용 감축에 돌입했다. 다이아몬드백에너지는 이날 새 유정을 개발하는 직원 3분의 1을 줄이고, 이번 분기에 예정된 세 곳의 굴착을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트레비스 스타이스 CEO는 “유가 회복의 확실한 징후가 나타날 때까지 비용절감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석유 생산은 지난주 하루 평균 1310만 배럴에 달해 2위 러시아(1129만 배럴), 3위 사우디(967만 배럴)보다 훨씬 많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의 대니얼 예르긴 부회장은 “미국은 현재 석유·가스 부문에서 생산량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배럴당 30달러 수준에선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CNBC는 러시아의 증산이 사우디보다 미국 셰일산업을 겨냥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헬리마 크로프트 RBC 상품전략책임자는 “러시아의 이번 움직임은 자국 에너지산업을 지원해온 미국 행정부의 제재 정책을 목표로 한 것일 수 있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증산을 금세 포기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러시아와 이란, 베네수엘라 등 산유국을 잇따라 제재함으로써 자국의 셰일오일 수출을 확대해왔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