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코로나 사태가 가져다준 '뜻밖의 기회'

사람관계도, 경제도 초토화시킨 코로나
비대면 추세가 '기능적 거리'를 더 좁혀
새로운 혁신을 싹틔우는 계기 됐으면

곽금주 <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
‘오랑캐의 땅엔 화초가 없으니 봄이 와도 봄이 온 것 같지 않구나(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중국 4대 미인 중 한 명으로, 전한시대 흉노와의 화친을 위해 스스로 공물이 돼야 했던 비운의 여인 왕소군. 그의 비통한 심정을 기린, 당나라 때 시인 동백규가 쓴 ‘소군원(昭君怨)’이란 시의 한 구절이다.

요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한국은 문자 그대로 춘래불사춘이다. 봄은 겨우내 동면에 들었던 만물이 기지개를 켜고 새롭게 소생하는 계절이다. 한방에서는 봄을 오행(五行) 중 목(木)에 해당한다고 보는데, 단단한 땅을 뚫고 새싹이 돋아나는 형상을 뜻한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영어의 ‘스프링(spring·봄)’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봄은 야구로 치면 1번과 2번 타자에 해당하는 ‘테이블 세터’다. 중심타선을 위해 기회를 만들어주는 갸륵한 조연이다. 그런 봄을 이름도 생소한 바이러스가 송두리째 앗아갔다.하지만 코로나19가 몰고온 위기가 온통 나쁜 것만은 아니다. 위기란 단어의 이면에 숨겨진 뜻밖의 기회, 즉 세런디피티(serendipity)도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최소 2m 거리 유지’로 대표되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기존의 개인적, 사회적 네트워크를 마비시켜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주고 있다. 개인적 약속은 기약 없이 취소되고, 많은 기업이 재택근무를 시행함에 따라 유동인구 감소로 지역상권이 초토화되고 있다. 한마디로 오프라인 일상의 붕괴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이런 물리적 거리에 따른 문제와 불편이 많이 감소한 게 사실이다. 인터넷과 SNS를 포함한 CMC(computer mediated communication: 컴퓨터를 이용한 소통)의 발달로 ‘심리적 거리’나 ‘기능적 거리’가 과거와 달리 ‘물리적 거리’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심리적 거리 측면에서 보면 과거와 같이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out of sight, out of mind)’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대면적 만남과는 다르지만 이제 문자메시지를 통해 항시 교류가 가능하고, 휴대폰의 영상 통화와 인터넷을 통해 서로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다. 개인적 관계 형성 및 유지에서 물리적 거리는 더 이상 심리적 거리를 방해하는 장벽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CMC를 활용한 온라인상의 교류관계가 지속성과 친밀도 면에서 더 강력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류 빈도가 대면관계에 비해 훨씬 더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문자는 정제된 표현으로 상대의 감정을 자극할 가능성을 줄여 상호 신뢰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CMC가 일반인들에게 가져다준 가장 큰 변화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기업이 채택하고 있는 재택근무다. 2018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 직장인의 57%가 유연근무제를 활용하고 있으며 29%가 재택근무를, 25%가 간헐적 재택근무를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봉이 깎이더라도 재택근무를 선호하는 근로자 비중 역시 날로 커지고 있다. 최근 조사에서는 재택근무를 위해 5%의 연봉 인하를 감수하겠다는 근로자 비율이 34%나 됐다. 이런 재택근무의 장점으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91%, 이하 복수응답 기준) ‘집중력 향상에 따른 생산성 증가’(79%) ‘스트레스 감소’(78%) ‘교통체증에서 해방’(78%) 등이 꼽혔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물리적 거리 유지는 역설적으로 CMC를 활용한 기능적 거리 좁히기를 시험할 기회로 볼 수 있다. 특히 재택근무를 포함한 유연근무제는 피할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에 따라 인류는 재택근무에 필요한, 자기 통제력이 강한 사람만이 생존하는 ‘호모 콤포스 아니미(Homo compos animi: 자기통제를 하는 인류)’로 진화할지도 모른다. 우리 산업계나 정부가 CMC를 활용한 혁신을 더욱 진취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이번 시련을 통해 마련되길 바란다. 왔으되 오지 않은 2020년의 봄, 이 질곡의 봄이 후일을 위한 치열한 테이블 세터(조연)였다고 기억될 수 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