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DLF·라임사태…금감원, 부실 방치하고 뭉개다 禍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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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갑 금융감독원 대해부 (2) 구호 뿐인 소비자보호금융감독원은 해외금리 연계 DLF(파생결합펀드) 사건에서 이상징후를 파악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놓쳤다. 불완전판매가 본지 첫 보도(2019년 8월)로 알려지기 전인 4월부터 금감원에는 분쟁조정 신청이 들어오고 있었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작년 10월 국회에서 DLF가 “갬블(도박) 같은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20일에는 라임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이 어디 있느냐는 야당 의원들의 추궁에도 “하나만 고르라면 운용사”라고 답했다.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질타가 돌아왔다. 금감원이 늘 소비자 보호를 앞세우지만, 실질적인 역할은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매년 7만~8만건 금융민원 접수
"민원처리 느리고 관행만 따져"
분쟁조정위 회부 0.1~0.3% 불과
“금감원의 소비자 보호, 부실하다”금융감독원에는 매년 7만~8만 건의 금융민원이 들어온다. 상당수는 단순 상담이지만, 금융회사와 다툼이 생겨 절박한 마음으로 찾아오는 사람도 많다. 2018년 기준 금융민원 8만3097건 중 34%(2만8118건)가 이런 ‘분쟁민원’이었다.
금감원은 전문적 판단이 필요하고 심각한 사안은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로 넘긴다. 저축은행 후순위채, 동양그룹 기업어음(CP), 키코(KIKO), 해외금리 연계 DLF 등 대형 금융 스캔들의 배상 문제는 모두 분조위에서 결론 났다. 분쟁조정 신청이 이미 300건을 넘은 ‘라임 사태’도 분조위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소비자 보호를 강조하는 금감원의 기조에 맞춰 분조위도 금융회사 책임을 엄격하게 묻는 추세다. DLF의 경우 불완전판매 분쟁 사상 역대 최고 배상비율인 20~80%가 매겨졌다. 배상비율 80% 사례는 치매에 난청까지 있던 79세 노인으로, 은행 잘못이 명백했다. 다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파격적인 수위”라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과거에는 ‘투자자의 자기책임’을 물어 배상비율이 30~40%를 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금감원이 소비자 보호 업무를 잘하고 있느냐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시민단체 금융소비자원의 조남희 원장은 “분쟁이 생기면 금융회사가 꼼짝 못 할 정도로 문제와 책임소재를 정밀하게 파악한 뒤 제재하는 게 순서”라며 “금감원은 언론의 책임론을 피하기 위해 중간발표부터 덜컥 한 뒤, 책임을 모는 데만 급급하다보니 ‘행정소송’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보 시민단체의 평가도 호의적이지 않다. 김주호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팀장은 “금감원은 인력 문제라고 하지만 민원 처리가 상당히 느리고, 안내나 진행상황 공개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배상 권고도 법적 강제성이 없다지만 너무 형식적”이라고 말했다.그냥 묻히는 민원도 많다
감사원은 지난 1월 ‘금융소비자 보호시책 추진실태’ 감사 보고서에서 금감원의 분쟁민원 처리 전반에 허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소멸시효가 지난 빚을 독촉받은 소비자가 민원을 넣었는데, 금감원은 위법 여부나 과태료 처분 등을 판단하지 않고 “업체와 자율조정하라”고 넘겼다. 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분쟁에서 전문가 자문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의 신청을 각하 처리한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금감원이 잘하고 있다면 잘못된 관행이 되풀이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DLF와 라임은 그나마 나은 편.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한 평범한 소비자는 분조위 구경조차 하기 어렵다. 금감원이 분조위로 회부한 분쟁은 2016년 0.1%(34건), 2017년 0.1%(19건), 2018년 0.3%(63건)에 불과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미회부 사유가 너무 폭넓게 규정돼 있고, 대부분의 사건이 금감원 실무자 선에서 종결된다”고 지적했다. 금융위원회 측도 “모든 분쟁을 분조위로 가져가선 안 되지만 회부율이 너무 낮다는 데는 공감한다”고 밝혔다.
이지섭 전국금융산업노조 실장은 “금감원은 산업 감독과 소비자 보호를 다 하겠다고 하지만 두 가지는 분명 결이 다른 목표”라고 말했다.
분조위에는 학계, 법조계, 소비자단체, 금융계 등 전문인사가 위원으로 참여하지만 금융위·금감원의 기조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분조위가 열리기 전 이미 분위기가 정해져 있고 그대로 결정날 때가 많다”며 “금융 분쟁을 관례적·자의적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분조위에 앞서 ‘피해자와 협의해 결과를 가져오라’고 하는데, 손에 피를 안 묻히겠다는 것으로 들린다”고 했다.
임현우/송영찬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