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5실 서울 특급호텔, 900여실이 '빈방'

'소비 빙하기' 현장 가보니
관광객 끊긴 면세점 '적막'

코로나 50일…유통가 '비명'
< ‘코로나 악몽’ 언제 끝나나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적인 대유행 단계로 접어들자 국내 면세점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겼다. 중국인 관광객과 보따리상으로 북적이던 서울 롯데면세점 명동본점 스타에비뉴가 12일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12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로비는 적막했다. 직원 몇 명이 보일 뿐 오가는 사람이 없었다. 평소 서울에서 가장 붐비는 호텔이 맞나 싶었다. 호텔 관계자는 “객실이 10% 찬 것 같다”고 했다. 이 호텔 객실 수는 신관과 구관을 합쳐 1015개. 900여 개 객실이 비어 있다는 얘기다.

이날 돌아본 웨스틴조선, 더플라자 등 도심의 다른 특급호텔들도 ‘개점휴업’ 상태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전 70~80%였던 객실 점유율은 이달 들어 10% 안팎으로 추락했다. 외국인, 내국인 할 것 없이 다중이용 시설인 호텔을 기피하고 있는 탓이다.

중국 보따리상과 외국인 관광객으로 넘쳐났던 롯데 신라 신세계 등 서울 시내면세점 상황은 더 심각했다. 롯데면세점 명동본점에 들어서니 마스크를 쓴 판매사원들이 매장을 지키고 있었다. ‘경비병’처럼 보였다. 이날 출근한 직원은 600여 명. 손님은 한 층에 10명 안팎이었다. 연간 5조원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세계 최대 면세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지난달 매출은 작년 같은 달보다 40% 이상 줄었다”며 “이달엔 방문객이 거의 없어 매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백화점·면세점의 절규
"직원 600명 출근했는데 손님 10여명뿐"롯데 신세계 현대 등 국내 백화점들은 오는 16일 대부분의 점포 문을 닫는다. ‘정기 휴일’로 정해져 휴점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문을 여는 게 오히려 손해인 요즘엔 쉬는 게 낫다”는 푸념도 나온다.

당초 백화점들은 이날 영업하려고 했다. 지난 1월 설 연휴에 이틀을 쉰 데다 2월에 또 한 차례 휴점한 터라 하루라도 더 물건을 팔아야 할 형편이었다.

백화점은 월평균 하루를 쉬는 게 원칙이다. 이 원칙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무너뜨렸다. 문을 여는 것보다 닫는 게 나을 정도로 백화점은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다. 한 백화점 임원은 “날이 갈수록 매출이 줄고 있어 우려스럽고 무섭다”고 말했다.
백화점들, “이젠 버티기 어렵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지 50여 일이 지났다. 소비시장은 가장 먼저 충격을 받았다. 현장에선 요즘 ‘소비절벽’을 실감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 등 극히 일부 분야를 제외하면 소비시장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백화점의 실적 악화는 그 한 단면이다.

국내 백화점들은 유통시장에서 ‘최후의 보루’로 통했다. 경기 악화, 온라인 쇼핑 확대 등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그나마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코로나19는 백화점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락으로 몰아가고 있다.국내 1위 백화점 롯데백화점의 최근 50일간(1월 20일~3월 10일) 매출 감소율은 전년 동기 대비 27.5%에 달했다. 신세계백화점(-20.7%), 현대백화점(-22.4%) 등도 20% 이상 매출이 줄었다. 백화점 매출을 뒷받침해온 명품조차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국내 한 백화점의 이 기간 해외 명품 매출은 4% 감소했다. 지난해 명품 판매는 20% 가까이 늘었다.

백화점은 휴업뿐 아니라 단축영업 카드까지 빼들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7일부터 주중엔 오전 11시 개장해 오후 7시에 닫는다. 1시간30분이나 영업시간을 줄였다. 롯데백화점이 설립된 1979년 이후 41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신세계백화점도 대부분의 매장 영업시간을 평일 1시간, 주말 1시간30분씩 단축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 폐점하거나 희망퇴직을 받는 백화점도 나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호텔 레스토랑 휴업 줄이어

호텔·면세업계의 상황은 더 좋지 않다. 롯데 신라 등 대기업 계열 호텔들조차 객실의 80% 이상이 비었다. 서울에선 강남북 가릴 것 없이 다 좋지 않다. 호텔이 몰려 있는 서울 명동의 한 호텔 관계자는 “300개 가까운 객실 중 단 두 개만 팔린 날도 있다”고 털어놨다. 강남의 한 호텔 관계자는 “객실 10%만 채워도 잘했다는 얘기를 듣는다”고 전했다. 일부 중소형 호텔은 통째로 문을 걸어 잠갔다. 소공동 크라운파크호텔서울도 그중 하나다. 지난 11일부터 임시 휴업에 들어갔다. 다음달 말까지 영업하지 않기로 했다.

호텔 레스토랑도 줄줄이 휴업 중이다. 웨스틴조선호텔서울의 ‘아리아’가 이달 들어 주중 휴업에 들어갔다. 아리아는 국내 3대 호텔 뷔페 레스토랑으로 꼽히는 곳이다. 코로나19 이전엔 한 달치 예약이 꽉 찰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롯데호텔 본점 메인타워 클럽 라운지와 ‘피에르바’도 지난 8일부터 휴업에 들어갔다. 롯데호텔 잠실점 뷔페 레스토랑 ‘라세느’는 조식을 없애고 평일 영업은 중단했다.

그랜드하얏트서울의 뷔페 레스토랑 ‘테라스’, JW메리어트서울의 ‘마고그릴’ 및 ‘모보바’, 인터컨티넨탈서울코엑스의 ‘브래서리’ 등도 휴업 중이다.

면세점들도 마찬가지다. 국내 1위 롯데면세점의 지난달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40% 이상 감소했다. 신라, 신세계 등 다른 면세점들도 매출이 ‘반토막’ 났다.이달 들어선 더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현상유지도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롯데면세점은 김포공항점 영업을 12일부터 중단했다. 명동본점, 잠실점 등 시내 면세점 영업시간도 단축했다. 신라면세점 역시 김포공항점 영업시간을 3시간30분 단축했다. 휴업도 검토 중이다.

안재광/오현우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