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대공황' 얘기를 너무 쉽게 하면 안된다"

'아무도 모른다'는 이유 때문에
코로나 '초기 충격' 큰 게 특징

전문가들 의견 맹신 경계하고
정부 과도한 시장개입 자제해야

백신 개발·확진자 감소 땐
주가·경기 빠른 회복도 가능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또 다른 10년, 2020년대 세계 경제는 ‘뉴 노멀’로 요약된다. 종전의 이론과 규범, 관행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용어다. 미래 예측까지 어려우면 ‘뉴 애브노멀’로 구별한다. 뉴 노멀 시대에 발생하는 모든 경제 행위는 첫 단계인 정확한 원인 진단부터 어려워 대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2020년대 세계 경제는 ‘디스토피아’가 자주 발생해 예상치 못한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돼 왔다. 디스토피아란 유토피아의 반대 개념인 반(反)이상향으로, 예측할 수 없는 지구상 가장 어두운 상황을 말한다. 《유토피아》의 저자 토머스 모어는 인간 현실 세계의 이상향으로 유토피아를 제시했다.4년 전 세계경제포럼(WEF)은 각 분야에 걸쳐 2020년대 세계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디스토피아 과제 28개를 발표했다. 발생 가능성과 파급력을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매겨 시급성을 따지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두 기준으로 볼 때 ‘기후변화 대응 실패’와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 질병’이 가장 우려된다고 평가했다.

통계학에선 자연·사회·정치·경제 현상을 평균치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고, 평균치에서 멀어질수록 발생 확률이 낮아지는 종 모양의 정규 분포로 설명한다. 디스토피아는 전형적인 ‘꼬리 위험’에 해당한다. 꼬리 위험은 정규 분포상 양쪽 끝으로, 발생 확률이 낮아 대책을 세워놓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발생하면 충격이 크다.

두 가지 의미가 합쳐진 뉴 노멀 시대에 발생하는 디스토피아는 유난히 초기 충격이 큰 것이 또 다른 특징이다.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모든 사람을 공포에 휩싸이게 하고, 세계 주가 폭락을 불러온 것은 뉴 노멀 디스토피아의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모른다’면 모든 경제 활동은 멈출 수밖에 없다. 죽은 시체와 같다는 의미의 ‘좀비 경제’라는 용어까지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정국 경제의 좀비화 정도를 알 수 있는 대용 변수인 통화유통속도, 통화승수, 예대 회전율 등과 같은 각종 경제활력지표도 속속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세계화에도 충격이 불가피하다. 전염성이 강한 뉴 노멀 디스토피아는 입국 제한 등을 통해 사람의 이동부터 차단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면 상품과 자본의 이동도 제한된다. 코로나19 충격이 커질수록 ‘세계화’보다 ‘자급자족(autarky) 경제’의 필요성이 고개를 든다는 것은 앞으로 각국 경제정책에 많은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정책 대응도 쉽지 않다. 금융위기 직후 ‘대공황 전문가’인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썼던 방식처럼 각국 중앙은행은 유동성을 긴급 공급하고 금리를 대폭 내리고 있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다. 당황한 각국 최고통수권자는 감세와 재정지출을 서둘러 추진하고 있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뉴 노멀 디스토피아 문제를 다룰 때 두 가지 경계해야 할 점이 있다. 하나는 ‘마이클 피시 현상’이다. 마이클 피시는 1987년 한 어부가 200년 만에 불어닥친 초대형 허리케인을 제보했으나 이를 무시해 영국 경제에 커다란 피해를 끼친 BBC 방송의 유명 기상 전문가다. 전문가의 말을 믿다간 오히려 더 큰 낭패를 당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른 하나는 주가, 금리 등과 같은 가격변수가 제 기능을 못 한다는 이유로 정부가 쉽게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시장 실패보다 정부 실패 비용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가격의 시장신호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불균형 이론에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수량 조정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균형에 도달한다.‘아무도 모른다’라는 상황이 반드시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대공황’ 얘기를 너무 쉽게 해서는 안 된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확 줄거나 백신 개발 소식만 들리면 주가가 빠르게 상승하고 경기가 회복될 수 있다. 대통령을 비롯해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은 코로나19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너무 낙관하거나 비관하지 말고 남의 탓을 해서는 안 된다.

국민은 생필품 사재기 등과 같은 이기주의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기업과 자산가 계층이 가장 많이 하는 ‘현금 확보’는 금융시장과 경기를 더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다. 나라 경제와 소상공인, 하위계층을 위한다는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경제활동에 임해야 한다. 지도자는 공감 리더십, 국민은 ‘프로 보노 퍼블리코(pro bono publico·공공선)’ 정신을 발휘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