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일요일의 눈 1 박시하(1972~)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굳센 공허를 희망이라 부른다
그리움의 못을 땅땅 박아놓고
세월을 걸어둔다
공허에는 금이 가지 않는다
영혼이 없다는 말은
눈물 한 방울이 만든 방에서
한없이 불어난다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일까
말할 수 없는 혀가 입안에서 우주만큼 커진다
사랑이에요
이 말할 수 없는 증폭이
나보다 큰 나를 안고 있는 당신이
하늘의 틈이 벌어지고
끝없는 눈이 내린다

시집 《무언가 주고받은 느낌입니다》(문학동네) 中사랑은 너무 커서 항상 부족한 고백이에요. 사랑의 힘은 너무 커서 공허를 희망으로 보이게 하고, 그리움은 세월도 비껴가지 못하네요. 문득 영혼을 빼앗긴 사람처럼 사랑에 넋이 나가기도 하지만 영혼 없이도 불어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온 세상의 모든 근원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그러나 사랑은 사랑한다고 백번을 말해도 사랑한다는 표현보다 사랑이 커서, 우주만큼 커서, 사랑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이 말할 수 없는 증폭, 이 너무 큰 불가능은 희한하게도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불가능이에요. 불가능한 것으로 가능한 유일한 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이서하 시인(2016 한경 신춘문예 당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