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논설실]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꼬리표'와 '지역 혐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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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민들이 2003년 지하철 화재 참사로 192명이 희생된 이후 17년 만에 닥친 '코로나 재앙'을 맞아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지난달 18일 신천지 신도인 31번 확진자를 시작으로 감염자가 폭증하면서 한 달여 만에 확진자가 6098명(17일 0시 기준)으로 늘었다. 전국 확진자(8320명)의 73.3%를 차지한다. 인근의 경북(1169명)을 합하면 대구·경북 확진자는 87.3%에 달한다.
다행히 코로나 사투에서 조금씩 희망이 보이고 있다. 하루 수백 명이 증가하던 대구 확진자가 엿새 동안 동안 두 자리 수에 머물고 있다. 경북에서는 닷새 동안 연속 한 자리 수다. 대구 한사랑병원(요양원)에서 18일 집단 감염이 발생하긴 했지만 대구·경북 지역민들은 끝 모를 공포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모임과 행사를 자제하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 이상의 고립과 '자가격리'를 묵묵히 지키며 코로나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코로나 확진 판정 후 입원도 못하고 친구와 부모가 사망해도 유족들이 "살려내라"고 당국에 소리 지르는 사례가 단 한 건도 없다. 그저 '불운'으로 여기고 묵묵히 속으로 삭히고 있다. 마스크를 더 어려운 사람에게 기부하는 등 대구시민들은 자신보다 더 힘든 이웃을 도우려 팔을 걷어붙이고 십시일반 온정을 모으며 희망의 불씨를 키워나가고 있다. 전국에서 모여든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 1000여명도 코로나와의 전쟁에 큰 힘을 보탰다.
주요 외신들은 코로나를 이겨나가는 대구·경북의 '담담한' 노력을 높게 평가한다. 영국 BBC, 미국 ABC 등은 "공황도, 폭동도, 사재기도 없다. 절제와 고요가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과 같은 도시봉쇄도 주민 엑소더스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미국 등 코로나가 확산 중인 나라들처럼 주민 이동금지령이나 자제령, 상점·종교시설 운영 금지 등도 없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전염병 방역 및 퇴치 모범사례로 기록되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정작 대구·경북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사회 전반에 확산된 '코로나 꼬리표'와 지역 혐오 발언이다. 중국 우한발 코로나19 국내 최대 피해지역인 대구·경북을 대상으로 한 비이성적인 혐오와 기피가 횡행하고 있다.정치권이 불을 붙인 '혐오 바이러스'는 지역 비하로 번지고 있다. 여당 정치인의 '대구 봉쇄' 발언을 필두로 막말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의 한 당원은 페이스북에 "신천지와 코로나 위협이 대구·경북에서만 심각한 이유는 한국당(미래통합당)을 광신하는 지역민의 엄청난 무능도 큰 몫"이라는 글을 올렸다. 지난 1일에는 같은 당 당원이 "대구는 손절매해도 된다"고 했다가 물의를 빚었다.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일부 인사들은 지역감정을 더욱 부추겼다. 방송인 김어준 씨는 지난 6일 서울시가 운영하는 TBS 방송에서 "코로나 사태는 대구 사태" 라고 말하기도 했다. 소설가 공지영 씨는 지난달 28일 자신의 트위터에 코로나 대구지역 확진자 수, 사망자 수를 정리한 사진과 지난 6·13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선거 결과를 붙인 사진을 공유하며 “투표 잘합시다”라고 해 비난을 받았다.
익명에 기댄 온라인에서는 막말의 수위가 더 높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최근 "대구 폐렴을 종식하려면 김OO 셰프님을 투입해야 한다"는 게시글을 삭제 의결했다.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을 일으킨 김모씨를 말하는 것으로, 글쓴이는 "대구 지하철에 불을 질러 통구이로 만들어 코로나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브랜드나 상품명에 ‘대구’가 들어간다거나 대구산(産) 제품이라는 이유로 구매를 꺼리는 사례도 있다.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물건 살 때 대구와 경북이면 거른다" "지금 시기에 이들 지역에서 택배 보내는 건 살인 행위 아니냐" 등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대구 사람이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열차 뒷 좌석 사람이 대구 사람 좌석에 소독제를 뿌렸다" 등 온라인에 등장한 일부 극단적인 사람들의 무분별한 행동이 코로나 재앙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주고 있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 대구시의회와 경북도의회가 최근 잇따라 "대구·경북의 아픔은 대한민국의 아픕입니다. 지역 혐오와 비하를 제발 멈춰 달라"고 호소한 이유다. 코로나는 지나가고 있지만 코로나를 정치적 목적으로 퍼뜨리고 있는 정치권의 '혐오 바이러스'는 국민들과 대구·경북 지역민 모두에게 지워지기 힘든 생채기를 남기고 있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다행히 코로나 사투에서 조금씩 희망이 보이고 있다. 하루 수백 명이 증가하던 대구 확진자가 엿새 동안 동안 두 자리 수에 머물고 있다. 경북에서는 닷새 동안 연속 한 자리 수다. 대구 한사랑병원(요양원)에서 18일 집단 감염이 발생하긴 했지만 대구·경북 지역민들은 끝 모를 공포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모임과 행사를 자제하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 이상의 고립과 '자가격리'를 묵묵히 지키며 코로나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코로나 확진 판정 후 입원도 못하고 친구와 부모가 사망해도 유족들이 "살려내라"고 당국에 소리 지르는 사례가 단 한 건도 없다. 그저 '불운'으로 여기고 묵묵히 속으로 삭히고 있다. 마스크를 더 어려운 사람에게 기부하는 등 대구시민들은 자신보다 더 힘든 이웃을 도우려 팔을 걷어붙이고 십시일반 온정을 모으며 희망의 불씨를 키워나가고 있다. 전국에서 모여든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 1000여명도 코로나와의 전쟁에 큰 힘을 보탰다.
주요 외신들은 코로나를 이겨나가는 대구·경북의 '담담한' 노력을 높게 평가한다. 영국 BBC, 미국 ABC 등은 "공황도, 폭동도, 사재기도 없다. 절제와 고요가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과 같은 도시봉쇄도 주민 엑소더스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미국 등 코로나가 확산 중인 나라들처럼 주민 이동금지령이나 자제령, 상점·종교시설 운영 금지 등도 없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전염병 방역 및 퇴치 모범사례로 기록되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정작 대구·경북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사회 전반에 확산된 '코로나 꼬리표'와 지역 혐오 발언이다. 중국 우한발 코로나19 국내 최대 피해지역인 대구·경북을 대상으로 한 비이성적인 혐오와 기피가 횡행하고 있다.정치권이 불을 붙인 '혐오 바이러스'는 지역 비하로 번지고 있다. 여당 정치인의 '대구 봉쇄' 발언을 필두로 막말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의 한 당원은 페이스북에 "신천지와 코로나 위협이 대구·경북에서만 심각한 이유는 한국당(미래통합당)을 광신하는 지역민의 엄청난 무능도 큰 몫"이라는 글을 올렸다. 지난 1일에는 같은 당 당원이 "대구는 손절매해도 된다"고 했다가 물의를 빚었다.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일부 인사들은 지역감정을 더욱 부추겼다. 방송인 김어준 씨는 지난 6일 서울시가 운영하는 TBS 방송에서 "코로나 사태는 대구 사태" 라고 말하기도 했다. 소설가 공지영 씨는 지난달 28일 자신의 트위터에 코로나 대구지역 확진자 수, 사망자 수를 정리한 사진과 지난 6·13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선거 결과를 붙인 사진을 공유하며 “투표 잘합시다”라고 해 비난을 받았다.
익명에 기댄 온라인에서는 막말의 수위가 더 높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최근 "대구 폐렴을 종식하려면 김OO 셰프님을 투입해야 한다"는 게시글을 삭제 의결했다.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을 일으킨 김모씨를 말하는 것으로, 글쓴이는 "대구 지하철에 불을 질러 통구이로 만들어 코로나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브랜드나 상품명에 ‘대구’가 들어간다거나 대구산(産) 제품이라는 이유로 구매를 꺼리는 사례도 있다.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물건 살 때 대구와 경북이면 거른다" "지금 시기에 이들 지역에서 택배 보내는 건 살인 행위 아니냐" 등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대구 사람이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열차 뒷 좌석 사람이 대구 사람 좌석에 소독제를 뿌렸다" 등 온라인에 등장한 일부 극단적인 사람들의 무분별한 행동이 코로나 재앙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주고 있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 대구시의회와 경북도의회가 최근 잇따라 "대구·경북의 아픔은 대한민국의 아픕입니다. 지역 혐오와 비하를 제발 멈춰 달라"고 호소한 이유다. 코로나는 지나가고 있지만 코로나를 정치적 목적으로 퍼뜨리고 있는 정치권의 '혐오 바이러스'는 국민들과 대구·경북 지역민 모두에게 지워지기 힘든 생채기를 남기고 있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