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투자 자금 앞다퉈 '엑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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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브라질 등 통화가치 폭락신흥국 금융시장에서 자금이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들 국가의 통화 가치는 일제히 폭락세를 보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국제 유가 폭락 등이 겹치며 신흥국들에 경제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뭉칫돈 빠져나가는 신흥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현지시간) 국제금융연구소(IIF) 분석을 인용해 “지난 1월 20일 이후 8주간 코로나19가 세계로 확산되는 사이 550억달러(약 70조원) 규모의 자금이 신흥국 주식과 채권 시장에서 빠져나갔다”고 보도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비슷한 기간에 신흥국 시장에서 이탈한 자금(250억달러)보다 두 배 이상 큰 규모다.글로벌 투자자들은 브라질 러시아 인도 등 주요 신흥국 시장에서 발을 빼고 있다. 브라질 증시의 보베스파지수는 올 들어 이날까지 43.5% 폭락했다. 러시아 MOEX지수도 31.3% 내려갔다.
미국 달러화 강세가 뚜렷해지면서 신흥국 통화 가치도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이날 러시아 루블화의 미 달러 대비 환율은 7% 이상 오른 달러당 80.94루블까지 치솟았다(루블화 가치 하락). 브라질 헤알화의 미 달러 대비 환율도 4%가량 오른 5.199헤알을 기록해 헤알화 가치는 사상 최저로 떨어졌다.신흥국發 금융위기까지 덮치나…두 달새 550억弗 '탈출 러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신흥국에서 대거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 위기 상황에선 ‘달러가 최고 안전자산’으로 여겨지고 있어서다. 당장은 코로나19 사태에 유가 폭락이 겹친 산유국의 충격이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충격은 산유국이 아닌 국가로도 번지고 있다. 이 때문에 신흥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국제금융협회(IIF)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인용해 지난 1월 20일 이후 이달 18일까지 신흥국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550억달러(약 7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가 신흥국으로 잡은 곳에는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이 포함됐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자금 유출 규모(250억달러)보다 두 배 이상 큰 수준이다.
달러가 신흥국에서 이탈하며 신흥국 통화 가치는 추락하고 있다. 타격이 큰 곳은 산유국이다. 이 기간 콜롬비아 페소화 가치는 미국 달러 대비 23.85% 떨어져 가장 큰 낙폭을 보였다. 멕시코 페소화 역시 23.01%, 브라질 헤알화는 19.60% 떨어졌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석유전쟁을 치르고 있는 러시아도 직격탄을 맞았다. 두 달 동안 러시아 루블화는 20% 넘게 추락했다. 특히 18일엔 7% 이상 하락했다. 이날 러시아 증시는 10% 넘게 빠졌다. 미국의 경제 제재에 코로나19까지 겹친 이란의 리알화 가치도 20% 가까이 급락했다. 이란은 외화 부족을 막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에 50억달러의 긴급 자금을 요청했다.브라질 증시 역시 마찬가지다. 올 들어 하락률은 43.5%에 이른다. 이 기간 멕시코 증시 역시 30.0% 넘게 하락했다.
산유국이 아닌 신흥국의 통화 가치도 나란히 하락세다. 1월 20일 이후 이날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 가치는 14.6% 떨어졌다. 같은 기간 터키 리라화(-8.1%), 인도네시아 루피아화(-11.2%), 말레이시아 링깃화(-7.2%) 등도 가치가 하락했다. 싱가포르(-6.1%), 인도(-4.4%) 등도 하락세를 비켜가지 못했다.
WSJ는 “신흥국들의 통화 가치 하락은 주식시장에도 악재”라고 분석했다. 이들 국가의 주식시장은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크게 하락했는데 여기에 통화 가치 변화율까지 감안하면 낙폭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브라질 증시 보베스파지수의 올해 하락폭을 달러 기준으로 환산하면 48%로 커진다. 러시아 MOEX지수도 달러 기준으론 낙폭이 40%를 웃돈다.코로나19 사태로 통화 가치가 폭락한 건 신흥국뿐만이 아니다. 영국 파운드화와 유로화 가치도 하락하고 있다. 파운드화 가치는 최근 10일 사이 미국 달러 대비 12% 하락했다. 파운드화 가치는 이날 하루에만 5% 가까이 떨어져 1985년 이후 35년 만에 최저 수준이 됐다. 유로화의 미국 달러 대비 가치도 지난 9일 이후 4.9% 급락했다.
신흥국들은 금융시장을 걸어 잠그는 초강수까지 두고 있다. 필리핀은 지난 17일 자국 주식시장을 포함한 금융시장을 전면 폐쇄했다. 이후 논란이 일자 이틀 만인 19일 운영을 재개했지만 투자자들이 급히 자금을 빼내면서 필리핀 증시 종합지수가 이날 개장 직후 한때 24%나 빠졌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오는 23일부터 월가에 있는 오프라인 거래소를 일시적으로 폐쇄한다고 이날 밝혔다. 전자거래만 허용하기로 했다. 객장 내 직원 중 2명이 코로나19 확진자로 판명된 데 따른 조치로 알려졌다. NYSE 모회사인 인터콘티넨털익스체인지(ICE)는 성명을 통해 “거래소 객장은 독특한 가치를 지닌 곳이지만, 우리의 시장은 전자거래 방식으로 충분히 운영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정락/정연일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