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개강 특수' 사라진 대학가…"19년 터줏대감도 폐업"

이슈 리포트

텅 빈 캠퍼스로 상권 휘청

"영업 36년 만에 이런 적 처음"
착한 임대인 캠페인은 먼 얘기
서울 경희대 정문 앞에 있는 한 중국식 디저트 카페의 유리 벽면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무기한 임시휴업’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배태웅 기자
“오늘 점심시간 손님이요? 세 분 왔어요. 세 분.”

지난 19일 오후 1시24분 서울 고려대 인근 식당인 ‘주유소’ 내부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이날 오전 11시 무렵 문을 열어 점심시간이 끝나갈 때까지 받은 손님은 세 명이 전부. 가게 직원인 최모씨(55)는 “이곳에서만 수년째 근무하는데 3월에 이랬던 적은 처음”이라며 “아르바이트생마저 ‘일거리가 없는데 나오기 미안하다’고 말하는 상황”이라고 했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와 대학의 대면강의 중단이 겹치면서 대학 인근 상권이 휘청거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무기한 영업중단’을 하거나 아예 폐업하는 가게도 속출하고 있다.

“하루 손님 1~2명뿐…문 닫아야 할 판”

20일 대학가에 따르면 서울 내 주요 대학들은 당초 이달 말까지로 예정된 온라인 강의 일정을 연장하기로 했다. 동덕여대 숙명여대 숭실대는 다음달 13일부터, 고려대는 이르면 다음달 6일부터 대면강의를 시작한다.

일부 대학은 온라인 강의를 대폭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KAIST와 서울대는 코로나19 사태가 끝날 때까지 온라인 강의를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성균관대도 1학기 모든 강의를 온라인 강의로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순식간에 학생들이 증발해버린 대학가 가게들은 ‘개점휴업’ 상태다. 서울 경희대 인근에서 PC방을 운영 중인 이모씨(51)는 이달 들어 매출이 작년 대비 4분의 1 토막 났다. 개강이 연기된 것은 물론 불과 700m 떨어진 동대문구 S모 PC방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하면서 손님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이씨는 “코로나19 사태가 더 지속되면 아르바이트생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대학 상권의 터줏대감들 역시 “코로나19 사태로 사상 초유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대입구역 인근에서 36년째 미용실을 운영하는 이화숙 씨(67)는 “하루에 받는 손님이 한두 명”이라며 “이 골목에서만 36년째 일하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고려대 인근에서는 2001년부터 영업해 온 식당이 지난 15일 경영난을 이유로 폐업하면서 상인들이 충격에 빠졌다. 고려대에서 30년 넘게 제본·인쇄업을 한 ‘문화사’ 직원 윤모씨(51)는 “사이버강의만 하다 보니 작년보다 매출이 70% 가까이 급감했다”며 “민주화운동 시절 학교가 봉쇄당했을 때도, 사스·메르스 유행 때도 이 정도로 심하진 않았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대학 상권들의 유동인구도 전년 대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SK텔레콤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경희대 상권은 작년 1월 평균 유동인구가 1만1679명이었으나 올 1월은 7431명으로 약 36% 감소했다. 서울대입구역 상권도 작년 1월 평균 유동인구가 3만3259명이었지만 올 1월 2만9272명으로 줄었다. 연세대 인근 신촌역 상권은 지난해 1월 평균 유동인구가 4만9127명으로 집계됐으나, 올해 1월은 4만6767명에 그쳤다. 고려대 안암역 상권도 작년 1월 1만2630명에서 올 1월 1만544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2~3월은 이보다 더욱 유동인구가 줄었을 것”이라고 말했다.“착한 임대료, 꿈도 못 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착한 임대인 운동’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임대인들이 월세를 일시적으로 내려서 임차인들과 상생하자는 취지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 임대료 인하분의 50%를 소득·법인세에서 감면하고 화재안전패키지 설치와 같은 각종 혜택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대학가 인근 상인들은 “우리와는 먼 얘기”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동전노래방을 운영 중인 전모씨(38)는 “마포구에서 ‘착한 임대인 운동에 동참해달라’며 현수막도 붙여놨지만 주변에서 실제로 월세를 적게 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며 “이달도 손님이 거의 없어 월세 350만원도 내기 어려울 지경”이라고 했다.

대학가 상인연합회들은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의 ‘소통채널’이 없다는 점을 문제로 지목하고 있다. 김상우 안암상인회장은 “개별 상인이 직접 건물주와 해결해야 하는 구조인 데다, 건물주들도 서로 눈치를 보다 보니 실제로 착한 임대인 운동으로 혜택을 본 가게는 서너 곳에 불과하다”며 “상인회 차원에서도 착한 임대인 운동에 동참해달라는 현수막을 붙이는 게 고작”이라고 말했다.

경희대 상인연합회인 경희마을사람들 관계자도 “임대료 인하가 된 곳을 보면 임대인이 주식회사이거나 대학본부여서 의사결정이 빨랐다”며 “앞으로 사태가 장기화하면 지역 건물주에게 일일이 손편지라도 써서 상인들의 사정을 호소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일부 상인은 당장 다음달로 다가온 부가가치세 예정고지세액부터 정부가 유예하거나 깎아줘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부가세 예정고지세액은 직전 과세기간 동안 낸 부가세액의 절반으로 책정되는데, 3~4월 영업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돼 세금을 낼 돈조차 없다는 얘기다. 경희대 인근 식당 주인인 이모씨(45)는 “통상적으로 4월에 내는 부가세 고지세액만 500만원 안팎인데 월세랑 겹치면 답이 없다”며 “임대료만 얘기할 게 아니라 당장 정부가 해줄 수 있는 것부터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생들 빠져나가 월세마저 하락세

학생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대학가 인근 지역 월세도 하락세다. 온라인 부동산 중개 플랫폼 다방이 발표한 임대 시세 리포트에 따르면 2월 국내 주요 대학 원룸 밀집지역 10곳 가운데 5곳은 월세 가격이 전달보다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국인 유학생이 가장 많은 경희대는 원룸 월세가 1월보다 9%(4만원)가량 내려갔다. 서울대도 월세 평균가가 5%(2만원) 하락했다. 이 밖에 고려대, 한양대는 각각 2만 원, 중앙대는 1만원 낮아졌다.지역별로 보면 주요 대학이 몰려 있는 동대문구(42만원)와 관악구(36만원)에서 각각 7%, 5%로 가장 큰 내림세를 보였다. 성동구(50만원), 성북구(45만원), 강남구(65만원)에서도 4% 하락했다. 다방 관계자는 “12~2월이 대학 새내기와 사회 초년생이 방을 구하는 시기임을 감안하면 이 같은 하락폭은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배태웅/이주현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