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2008년 악몽' 되풀이되나

김현석 뉴욕 특파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뉴욕 금융시장을 강타했다. 증시뿐 아니라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미국 국채시장까지 요동치며 최근 값이 급락했다. 회사채시장은 말할 나위가 없다. 투자등급 채권값이 약 25% 떨어졌고, 하이일드시장에선 절반 넘게 추락한 채권도 부지기수다. 정크본드의 스프레드(국채와의 금리 차)는 지난 20일 10%포인트까지 벌어져 사실상 거래가 사라졌다.

이는 회사채만의 문제가 아니다. 투기등급 기업들이 빌린 대출을 섞어 만든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 이들 기업에 대출과 채권 형태로 돈을 빌려준 사모부채펀드(PDF) 등의 사정도 심하면 심했지 나을 게 없다.폭락하는 위험 자산 가격

문제는 위험자산인 이런 미국 CLO와 PDF에 한국의 금융회사와 연기금, 공제회 등이 최근 4~5년간 대체투자 차원에서 대거 투자해왔다는 점이다. 수익률이 연 7~10%로 높아서다. 월가 관계자는 “위험을 따지면 연 7% 이상 수익률을 올리기 어렵다”며 “한두 곳이 먼저 투자해 높은 수익을 올리자 모두 몰려들었다”고 말했다.

미국 경제는 올초까지 11년간 호황을 구가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침체에 직면하자 이들 자산의 가치는 폭락하고 있다. 벌써 셰일업계 등 일부 기업의 파산이 시작됐다. 이는 이들 기업의 대출이 포함된 CLO와 PDF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 대체투자 열풍 속에 한국 투자자가 가장 많이 산 자산이 미 부동산과 인프라다. 해외부동산펀드 잔액만 50조원에 달한다. 그리고 인프라의 대표 상품이 셰일 붐에 편승한 파이프라인이다.셰일업계에선 유가 폭락으로 최대 40~50% 파산설이 나돈다. 원유 수요가 급감한 상태에서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증산에 들어간 탓이다. 셰일업체들은 산유량부터 대폭 줄였다. 파이프라인 가치는 폭락하고 있다. 대부분 수년간 공사를 거쳐 작년 가동에 들어간 라인이다.

뉴욕엔 수많은 금융상품이 있다. 수익률 높은 상품도 많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도 높다. 월가 관계자는 “돈이 넘치는 월가에서 한국까지 가서 상품을 파는 건 다 이유가 있다”며 “이런 상품은 대부분 월가 인사이더들이 보고 투자를 피한 물건일 수 있다”고 말했다.

고수익 안전 상품은 없다그러다보니 ‘20 타임스퀘어’ 같은 사태가 터진다. 맨해튼 타임스퀘어에 있는 신축 건물 ‘20 타임스퀘어’는 작년 10월 부도를 맞았다. 가장 비싼 1~3층을 쓰던 미국프로풋볼(NFL) 측이 위약금까지 물며 나갔기 때문이다. 현지 나타시스은행은 NFL이 나갈 무렵 13억달러 상당 대출채권 대부분을 팔았고, 이 중 6억달러 이상을 은행 증권사 등 10여 개 한국 금융사가 인수했다. 부동산 불황에 코로나 사태까지 덮치자 건물 가치가 급락하고 있다. 경매에 부쳐지면 중순위 이하 대출채권을 가진 금융사는 한 푼도 건지지 못할 수 있다.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우리은행에 출입했다. 당시 우리은행은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와프(CDS) 투자로 1조6000억원 넘게 날렸다. 연임을 노린 황영기 당시 행장이 실적 목표를 높였고, 이에 투자금융(IB) 부서가 ‘같은 투자등급 채권인데 수익률은 높은’ CDO에 대거 투자했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 신한은행, 농협 등도 막대한 손실을 봤다.

CLO는 CDO와 기초자산만 다를 뿐 똑같은 구조다. 2008년 당시 금융사들은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속담을 되뇌어야 했다. 12년이 흐른 지금, 그 일을 다시 반복해야 하는 건 슬픈 일이다.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