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회원 26만명 추적…'공범'으로 처벌 받을까

文대통령 "전원 조사하라"
법조계 "유료회원 모두 공범…처벌 불가피"
댓글로 범행 가담시 징역 5년↑…방조죄도 적용
경찰, 해외 '디스코드'도 수사
경찰이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촬영한 성착취 음란물을 메신저를 통해 시청하고 공유한 참여자를 추적 중인 가운데 법조계에선 단순 참여라도 처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범행을 유도하는 댓글을 남기는 등 적극적으로 가담했을 경우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상 제작자와 공범으로 간주돼 5년 이상 유기징역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벌어진 미성년자 성착취 사건(일명 ‘n번방’)과 관련 “아동·청소년 16명을 포함한 피해 여성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국민의 정당한 분노에 공감한다”며 “경찰은 ‘박사방’ 운영자(사건의 주범) 등에 대한 조사에 국한하지 말고 n번방 회원 전원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부 여성단체는 텔레그램 성 착취물 공유방 60여 곳의 이용자가 총 26만 명에 달한다고 추정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박사방’ 회원들도 법에 근거한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수사하고, 해외 메신저인 디스코드 등을 통한 성착취영상 제작·유포 행위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단순 참여자라도 처벌이 불가피하고, 회비 납부나 댓글 활동 등에 따라 형량이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n번방 유료회원은 불법 영상물임을 알고도 25만~125만원의 비용을 지급하고 이용한 것이기 때문에 모두 공동정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청법상 가장 무거운 음란물 제작자의 형량(무기징역이나 5년이상의 유기징역)에 준하는 처벌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n번방의 불법 제작·유통 구조는 기존 음란물과 완전히 다르다”며 “회원이 되기위해 불법영상물을 다른 곳에 공유하도록 했다는 점, 회원 가입시 인증절차가 까다로웠다는 점, 쌍방향 소통으로 미성년 착취물을 요구했다는 점 등에서 이들은 최소한 방조(남의 범행을 돕는 범죄)이상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오선희 변호사도 “제작자에게 새로운 범행을 요구하는 댓글을 남긴 이용자는 음란물 제작자의 공동정범으로 간주될 수 있다”며 “유료회원이나 단순 이용자도 아청법상 영리 목적의 배포·제공자의 공범으로 간주돼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청법에 따르면 만 19세 미만이 등장하는 음란물은 단순 소지만 해도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이 같은 영상물을 제작·수입·수출하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유기징역에, 영리목적으로 판매·배포·대여·제공할 경우 10년 이하 징역으로 처벌된다.

이수연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도 “회비를 내면서 정범을 물질적으로 지원하고 격려와 독려를 통해 정신적으로도 지원한 만큼 방조·교사죄 적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른 변호사도 “성착취 영상이 거래된 플랫폼 자체도 텔레그램이라는 은밀한 곳인데다, 관리자들이 불법 영상물을 올리지 않는 참가자들을 강제퇴장 조치까지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관전자들 상당수가 해당 행위가 불법임을 알고도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영미 변호사는 “피해 청소년들을 협박하고 문신까지 하도록 시키게 했다는 점에서 강요죄 적용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진우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성범죄의 법리 틀로만 보지말고, 일종의 ‘인격 살인’이자 전근대적인 강력범죄로 봐야한다”고 말했다.수사 여건을 고려할 때, 수십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참여자 모두를 처벌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은의 변호사는 “가입자의 상당수가 본인 명의 아닐 수 있는 만큼 IP가 실제 본인이 사용하는 기기가 일치하는지 일일이 대조하는 작업 필요하다”며 “현실적으로 수사 인력에 한계가 있는 만큼 경찰이 어떤 기준을 통해 수사와 처벌을 할지 가이드라인을 먼저 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법조계에선 그동안 디지털성범죄에 관대했던 판례도 바뀌고, 관련 법개정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1~2월 음란물 8개를 파일 공유 프로그램을 통해 배포하고 음란물 160여개도 컴퓨터, USB, 휴대폰 등을 통해 소지했다. A씨는 앞서 동종 범행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었음에도 서울북부지방법원은 지난달 그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애초에 재판에 넘겨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아동 음란물을 소지한 혐의로 총 2815명이 검찰 수사를 받았으나, 기소된 인원은 361명(12.8%)에 불과했다. 오선희 변호사는 “음란물 유포자들에 대해 그동안 우리나라 법원은 약소한 벌금이나 집행유예를 내리는 등 다른나라에 비해 엄하게 처벌하지 않고 선처해왔다”며 “사회적 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디지털성범죄 관련 최근 양형기준을 바꾸는 작업을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대규/이인혁/배태웅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