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반토막'…재택 근무의 그늘, 시름 깊은 오피스 상권
입력
수정
강남역 등 출퇴근 인구 40% 감소"바깥에 있는 박스를 보시면 아시잖아요."
편의점, 식당 등 매출 반토막
재택근무 적은 지역은 오히려 매출 늘어
23일 신분당선 지하철 판교역 인근의 편의점. '장사가 잘 되느냐'는 질문에 돌아온 아르바이트생의 답이다. 직장인들이 출근길에 아침거리 등을 사들고 가면 줄어든 상품을 메우기 위해 오전 10시를 전후해 새 상품이 박스에 담겨 들어온다. 보통 8박스가 들어왔지만 이날 가게 앞에 놓인 박스는 4박스 뿐이었다.아르바이트생 김모씨(22)는 "출근 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운 판교 IT기업들의 특성상 지금도 커피 등을 사가는 직장인들이 편의점 내에 줄을 섰다. 하지만 지금은 가게가 텅 비어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재택근무 시작하자 유동인구 줄었다"
재택근무 확산은 관련 상권에 큰 타격을 줬다. 오피스 빌딩들이 몰려 있는 지역의 타격이 특히나 컸다.
서울 시내 지하철 1~8호선 운영을 담당하는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오피스 밀집 지역의 유동인구는 재택근무 시행 이후 크게 감소했다. 재택근무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지난달 마지막 주 지하철 2호선의 출퇴근 시간 승하차 인원은 전년 동기 대비 42% 감소했다. 대기업 본사 등이 많은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은 25%, 벤처기업들이 많은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은 18% 줄었다.유동인구 감소는 상권 타격으로 이어졌다. 다른 대기업들과 비교해서도 적극적으로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는 SK그룹 계열사들이 많은 분당선 정자역 인근에서는 최근 음식점 세 곳이 문을 닫았다. 점심·저녁 장사가 안되는 가운데 인건비와 월세를 감당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재택근무가 늘면서 편의점들은 위치에 따라 음영이 엇갈린다. 편의점 체인 CU관계자는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오피스가의 매출은 줄고, 주택밀집 지역에서는 매출이 늘어나는 경향이 확연하다"고 전했다.
구로디지털단지역 인근의 한 편의점 점주는 "유동인구가 20% 정도 줄었는데 매출은 40% 이상 감소했다"며 "회식이 사라지고, 출근자가 감소하면서 숙취해소 음료의 판매량이 가장 크게 떨어졌다"고 전했다.◆유령도시 된 판교
재택근무에 따른 자영업 타격은 판교역 인근에서 가장 쉽게 관찰할 수 있다. 네이버, 다음카카오, 엔씨소프트 등 IT 대기업들이 밀집돼 있지만 주택가와 일반 유흥가는 거리가 멀어 재택근무 확산에 따른 타격을 고스란히 받는다.
판교역 인근 식당과 카페들은 점심 시간에도 한산했다. 한 피자가게 판매원은 "보통 하루 매출이 50만원을 넘겼는데 요즘에는 20만원도 팔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 게임업체 인근 카페의 아르바이트생도 "하루 150잔 이상 팔던 음료를 50잔 이상 팔기 어려울 때도 많다"며 "날씨가 따뜻해지며 한창 커피 판매가 늘어날 시점인데 걱정"이라고 전했다.재택근무 확산에 일하는 직원이 줄어든 것은 물론, 기업활동 전반이 위축된 것도 원인이다. 재택근무 돌입 이후에도 출근을 계속하고 있다는 한 IT업체 팀장급 직원은 "고객 등 사람을 만나 밥이나 커피를 살 일 자체가 사라졌다"며 "법인카드가 동면에 들어갔다"고 했다.
한 인쇄업체 관계자도 "봄이 되면 IT업체들이 고객 대상 행사나 신규 게임 설명회를 열었는데 올해는 관련 이벤트가 완전히 사라졌다"며 "일자리가 없어 일부 직원이 무급휴직에 들어갔다"고 전했다.◆재택근무 적은 지역 상가는 오히려 수혜
역시 기업들이 집중돼 있는 구로디지털단지역 상권에서는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났다. 역에 가까운 오피스 상권이 재택근무에 따른 피해를 호소한 반면, 멀어질수록 오히려 매출이 늘어났다는 점포가 나타난 것이다.
전철역에서 걸어서 5분거리에 있는 한 분식집은 30개가 넘는 테이블이 모두 비어 있었다. 식당 사장은 "점심 시간은 지났지만 그래도 테이블 5~10개에는 손님이 있을 시간"이라며 "재택근무가 늘며 매출이 40% 정도 줄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철역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한신IT타워 빌딩에 입주한 커피 가게는 오히려 매출이 15~20% 늘었다고 했다. 직원 10~20명 정도의 소기업 200여개가 입주한 곳이다. 가게 직원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소기업들이 많다보니 재택근무를 하는 곳들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출근하신 분들이 코로나19 때문에 멀리 나가기는 꺼려서 도시락 등으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러 내려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게다가 건물 방역이 잦아지면서 방역작업이 있을 때마다 내려와서 커피를 드시는 분들 덕분에 매출이 늘었어요. 카페가 '코로나 피난처'라고 불릴 정도에요."인근 브랜드 카페 관계자도 "매출이 10%가량 줄긴 했지만 저녁에 일찍 퇴근해서 생긴 일로, 점심 매출은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노경목/구은서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