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자금시장 '소방수'로 나선 韓銀…"그래도 2%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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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위기 대응
한은, 경제계 호소 귀 기울여야
Fed, 제로금리에 달러 살포 등
총력戰 펼치는데도
韓銀은 눈치보기식
'찔끔 처방'으로 시장불안 키워
한은은 한국에서 코로나19가 번지기 시작한 이후 팔짱만 끼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한국에서 코로나19 변곡점은 지난달 18일이었다고 보건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신천지의 31번 환자가 나왔고, 이날 확진자가 31명에서 51명으로 늘었다. 이후 급증세를 보여 26일 0시 현재 9214명으로 불었다. 그사이 대다수 국민이 자발적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면서 소비와 생산이 급감하는 등 경제가 마비되기 시작했다.
한은은 하지만 한 달 가까이 지난 이달 16일에야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린 연 0.75%로 조정했다. 이후 RP 대상 증권 확대, RP 매입, 금융중개지원대출 금리 인하 등에 나섰지만 시장의 불안은 해소되지 않았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금기’로 여겨지는 중앙은행 비판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회장은 지난 20일 한은에 “아직 문제의식이 안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대다수 시장 참가자와 전문가들은 이 회장의 발언에 공감을 표시했다. 특히 미국 중앙은행(Fed)의 조치를 지켜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한은이 너무 더디다” “한은이 보신주의와 기관이기주의에 빠져 있다” “한은은 소방수 자격이 없다” 등의 지적을 내놨다.
한은이 이날 내놓은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한 시장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특히 최근 단기 자금조달이 막혀 유동성 위기에 빠진 증권사와 여신전문금융사들에 ‘숨통’을 틔워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한은은 여전히 2%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은 “전대미문의 위기상황인데도 한은이 외국 중앙은행과 달리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흑자도산 기업이 속출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특히 한은이 기업에 직접 자금을 꽂아주는 방식을 머뭇거리고 있어 Fed에서 자금을 받는 미국 기업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선제적인 금리 인하 타이밍을 놓치거나 금융사의 자금 유동성 문제가 터지자 뒤늦게 조치에 나서는 등 매번 정책대응이 한발 늦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한은 내부에서도 한은이 과감하게 돈을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차현진 한은 인재개발원 교수는 미디어웹진 ‘피렌체의 식탁’에 ‘한은이 Fed처럼 담대하게 돈을 풀 때’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전문가들은 한은이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보고 있다. 당장 기준금리를 더 내릴 여력이 있다. 만기가 긴 국채와 공사채 등을 사들여 양적완화의 기간과 규모를 키울 수도 있다. 한국형 양적완화는 단기자금 공급에 그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회사채와 CP를 직접 사들이는 방법도 있다. 또 한은법에 저촉된다면 정부를 설득해 보증을 받는 방법을 강구해볼 수 있다는 조언이 나왔다.
박준동 경제부장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