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경제위기에도…경기부양 합의 실패한 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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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부양 대책을 놓고 회원국 간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EU는 2주 후에 경기부양 대책을 재논의하기로 했다. 미국이 ‘무제한 양적완화’ 등 잇단 경기부양 대책을 신속히 내놓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EU 회원국 간 합의가 불발되면서 가뜩이나 바닥을 찍고 있는 유럽 경제가 더욱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U 회원국 27개 정상들은 26일(현지시간) 오후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화상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는 당초 예정보다 4시간 늦게 끝났다. 정상들은 회의가 끝난 후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공동 선언문을 채택했다. 선언문엔 △바이러스 확산 억제 △의료장비 공급 △관련연구 확대 △사회·경제적 지원(경기부양 대책) 등이 담겼다.EU 정상들은 경기부양을 위해 자연재해 복구 등을 위해 쓰는 370억유로(약 50조원) 규모의 EU 연대기금을 활용하기로 합의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주 내놓은 7500억유로 규모 추가 양적완화 대책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재정적자와 정부부채 비율을 일정 한도로 제한하는 EU 재정정책 준칙인 안정·성장협약(SGP)도 일시 중단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관심을 모았던 유로안정화기금(ESM) 구제기금 사용과 유로존 공동채권인 ‘유로코로나채권’ 발행은 선언문에 포함되지 않았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사진)은 회의가 끝난 후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유로존 재무장관들이 향후 2주 안에 강력한 경기부양 대책을 제안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회의에서 경기부양 대책을 놓고 강력한 지원을 요구하는 스페인, 이탈리아 등과 독일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의 의견이 충돌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정상들은 경제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심도깊은 토론을 진행했다”며 “앞으로도 이런 논의는 계속될 것”이라고 원론적인 입장만 내놨다. AP통신은 “재정 여력이 탄탄한 독일 등 북부 국가와 그렇지 못한 남부 국가 간 해묵은 갈등이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 재정여력이 탄탄한 유럽 국가 정상들은 이날 회의에서 유로존 공동채권 발행을 놓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슬로베니아,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등 EU 9개 회원국 정부는 일시적인 유로채권 발행을 요구하는 공식 서한을 지난 25일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보냈다.
EU에선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 때부터 회원국이 공동 발행하는 유로채권을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회원국이 개별적으로 발행하는 국채를 대신해 유로존 회원국들이 공동으로 지급보증을 한 우량채권을 발행하자는 것이다. 재정이 취약한 남유럽 회원국은 차입 비용과 신용 리스크를 낮출 수 있다. 반면 독일 등 북유럽 국가는 자체적으로 국채를 발행할 때보다 자금조달 비용이 늘어나고 신용이 하락하는 등 부담이 커지게 된다.
당초 발표가 유력시됐던 ESM 구제기금 활용도 이날 선언문에 담기지 못했다. ESM은 2012년 출범한 EU의 상설 구제금융기구다. 2011년 그리스 등 남유럽 재정위기 당시 회원국의 구제금융에 대응할 상설 기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출범했다. 총 기금규모는 5000억유로(약 666조원)다. 재정·금융위기가 우려되는 회원국 정부를 대상으로 대출 및 국채매입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해당 국가의 은행 등에 대한 직접지원뿐 아니라 회사채 매입도 가능하다. ESM 구제기금 활용에도 독일 등 북유럽 국가들은 미온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ESM은 ECB 지분율에 비례해 유로존 회원국이 공동 출자했다.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의 지분율이 가장 높다. 독일 등 일부 북유럽 국가들은 그동안 ESM 구제기금 활용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재정상태가 양호한 이들 국가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선 자국 정부가 재정지출을 먼저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코로나19로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이날 회의 결과에 거세게 반발했다.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경기부양 대책으로는 지나치게 약하다는 것이 이들 국가의 주장이다. 주페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이날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 특별담화를 통해 “코로나19에 따른 경기침체와 급격한 실업률 증가를 막기 위해 EU가 특별하고 예외적인 경기부양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EU 회원국 간 갈등으로 추가 경기부양 대책이 늦어지면서 유럽 경제에도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유럽 경제가 가뜩이나 바닥을 찍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지원이 늦어질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코로나19 여파로 유로존의 기업경기 활동은 역대 최저치를 찍고 있다. 시장정보업체 IHS마킷이 지난 24일 발표한 유로존의 3월 종합 구매관리자지수(PMI) 예비치는 31.4로, 지난달 51.6에서 큰 폭으로 하락했다. 1998년 PMI 조사를 시작한 이래 역대 최저치다. PMI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기업활동을 평가해 경기 동향을 가늠하는 지표다. 기업 구매담당자를 대상으로 신규 주문, 생산, 재고 등을 설문 조사해 0부터 100까지 수치로 평가한다. 이 수치가 50보다 크면 경기 확장, 50보다 작으면 경기 수축을 뜻한다.
한편, EU 정상들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30일간 EU 입국을 금지한 조치에 대해 적절한 시점에 연장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EU 회원국 간 국경을 임시로 통제한 경우엔 사람과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이라는 EU 단일시장 원칙을 저해하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EU 회원국 27개 정상들은 26일(현지시간) 오후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화상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는 당초 예정보다 4시간 늦게 끝났다. 정상들은 회의가 끝난 후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공동 선언문을 채택했다. 선언문엔 △바이러스 확산 억제 △의료장비 공급 △관련연구 확대 △사회·경제적 지원(경기부양 대책) 등이 담겼다.EU 정상들은 경기부양을 위해 자연재해 복구 등을 위해 쓰는 370억유로(약 50조원) 규모의 EU 연대기금을 활용하기로 합의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주 내놓은 7500억유로 규모 추가 양적완화 대책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재정적자와 정부부채 비율을 일정 한도로 제한하는 EU 재정정책 준칙인 안정·성장협약(SGP)도 일시 중단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관심을 모았던 유로안정화기금(ESM) 구제기금 사용과 유로존 공동채권인 ‘유로코로나채권’ 발행은 선언문에 포함되지 않았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사진)은 회의가 끝난 후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유로존 재무장관들이 향후 2주 안에 강력한 경기부양 대책을 제안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회의에서 경기부양 대책을 놓고 강력한 지원을 요구하는 스페인, 이탈리아 등과 독일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의 의견이 충돌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정상들은 경제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심도깊은 토론을 진행했다”며 “앞으로도 이런 논의는 계속될 것”이라고 원론적인 입장만 내놨다. AP통신은 “재정 여력이 탄탄한 독일 등 북부 국가와 그렇지 못한 남부 국가 간 해묵은 갈등이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 재정여력이 탄탄한 유럽 국가 정상들은 이날 회의에서 유로존 공동채권 발행을 놓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슬로베니아,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등 EU 9개 회원국 정부는 일시적인 유로채권 발행을 요구하는 공식 서한을 지난 25일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보냈다.
EU에선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 때부터 회원국이 공동 발행하는 유로채권을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회원국이 개별적으로 발행하는 국채를 대신해 유로존 회원국들이 공동으로 지급보증을 한 우량채권을 발행하자는 것이다. 재정이 취약한 남유럽 회원국은 차입 비용과 신용 리스크를 낮출 수 있다. 반면 독일 등 북유럽 국가는 자체적으로 국채를 발행할 때보다 자금조달 비용이 늘어나고 신용이 하락하는 등 부담이 커지게 된다.
당초 발표가 유력시됐던 ESM 구제기금 활용도 이날 선언문에 담기지 못했다. ESM은 2012년 출범한 EU의 상설 구제금융기구다. 2011년 그리스 등 남유럽 재정위기 당시 회원국의 구제금융에 대응할 상설 기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출범했다. 총 기금규모는 5000억유로(약 666조원)다. 재정·금융위기가 우려되는 회원국 정부를 대상으로 대출 및 국채매입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해당 국가의 은행 등에 대한 직접지원뿐 아니라 회사채 매입도 가능하다. ESM 구제기금 활용에도 독일 등 북유럽 국가들은 미온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ESM은 ECB 지분율에 비례해 유로존 회원국이 공동 출자했다.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의 지분율이 가장 높다. 독일 등 일부 북유럽 국가들은 그동안 ESM 구제기금 활용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재정상태가 양호한 이들 국가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선 자국 정부가 재정지출을 먼저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코로나19로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이날 회의 결과에 거세게 반발했다.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경기부양 대책으로는 지나치게 약하다는 것이 이들 국가의 주장이다. 주페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이날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 특별담화를 통해 “코로나19에 따른 경기침체와 급격한 실업률 증가를 막기 위해 EU가 특별하고 예외적인 경기부양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EU 회원국 간 갈등으로 추가 경기부양 대책이 늦어지면서 유럽 경제에도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유럽 경제가 가뜩이나 바닥을 찍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지원이 늦어질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코로나19 여파로 유로존의 기업경기 활동은 역대 최저치를 찍고 있다. 시장정보업체 IHS마킷이 지난 24일 발표한 유로존의 3월 종합 구매관리자지수(PMI) 예비치는 31.4로, 지난달 51.6에서 큰 폭으로 하락했다. 1998년 PMI 조사를 시작한 이래 역대 최저치다. PMI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기업활동을 평가해 경기 동향을 가늠하는 지표다. 기업 구매담당자를 대상으로 신규 주문, 생산, 재고 등을 설문 조사해 0부터 100까지 수치로 평가한다. 이 수치가 50보다 크면 경기 확장, 50보다 작으면 경기 수축을 뜻한다.
한편, EU 정상들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30일간 EU 입국을 금지한 조치에 대해 적절한 시점에 연장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EU 회원국 간 국경을 임시로 통제한 경우엔 사람과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이라는 EU 단일시장 원칙을 저해하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