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의'ASEAN 톺아보기'(39)] '중견국 외교' 기회 넓힌 코로나 팬데믹
입력
수정
지면A37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무섭다. 미국의 확진자 수가 중국을 뛰어넘었고 이탈리아, 스페인에서는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 일본 도쿄올림픽은 내년으로 연기됐다. 의료 인프라가 열악한 개발도상국에도 감염이 확산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해 있는 동남아시아도 마찬가지다. 아세안 10개국 모두 감염자가 급속히 증가하는 추세다. 내달 초 개최 예정이던 아세안 정상회의가 연기됐다. 추후 아세안 관련 회의들이 제대로 열릴지도 불분명하다. 코로나19 사태가 얼마나 지속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게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한다.
지난주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이 화상회의를 통해 코로나19의 보건·사회·경제적 영향을 평가하고 대응 방안을 협의한 것은 의미가 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G20의 역할이 컸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가 G20회의 개최를 주도적으로 제안한 것은 시의적절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경험과 경제 활성화 대책을 설명하고 △방역 경험 및 임상 데이터 공유 △치료제 및 백신 개발 협력 △보건·의료 취약국가 지원 및 개도국 경제 안정을 위한 협력을 강조했다. 특히 과학자·의료진·기업인 등 필수 인력의 이동을 허용하는 국제 교류 방안을 제시해 외교적 존재감을 과시했다.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보건·의료 문제를 넘어 엄청난 국제 정치·경제적 파장이 일 것으로 우려된다. 이미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될 수 있다는, 세계화의 취약성을 확인했다. 향후 탈(脫)세계화 등 국제질서 재편 바람이 몰아칠 수 있다. 또 글로벌 리더십을 둘러싸고 미·중 간 경쟁관계가 심화될 경우 한국, 아세안 등 중소국가들의 전략적 딜레마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신남방정책 전략·목표 재조정 필요
신남방정책도 시험대에 올랐다. 한국은 아세안과 ‘더불어 잘사는 사람 중심의 평화공동체’를 구현한다는 전략 목표 아래 2020년까지 교역 2000억달러, 인적 교류 1500만 명 수준의 협력관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신남방정책의 목표와 전략 재조정이 불가피해졌다. 무엇보다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중국은 지난달 20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중·아세안 특별 외교장관회의를 열어 협력 방안을 협의했다. 이미 몇몇 국가에 대한 의료진과 의료물품 지원을 늘리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20일 아세안과 화상 장관회의를 열었다.
우리의 방역과 경제 활성화가 우선이지만, 신남방정책이 모멘텀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세안은 1만 개 이상의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고, 수출 비중이 20%나 되는 지역이다. 또 50여만 명의 동포가 거주하고 있고, 연 900만 명의 한국인이 방문하는 지역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남방정책 기반 위에서 그리고 문 대통령이 G20 화상회의에서 제시한 협력 방안의 바탕 위에서 코로나19 대책을 검토해야 한다. 우선, ‘사람 중심의 상생번영’ 실현이 신남방정책의 핵심 가치인 만큼 방역 및 보건 인프라 지원, 의료물품 제공, 의료 역량 개발 및 기술 지원 등 우리의 능력 범위 안에서 최대한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적개발원조(ODA), 아세안 관련 펀드 등 모든 재원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코로나 위기서 새 기회 만들어야
또 글로벌 공급망의 다변화 및 재구조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상황이 정상화될 때까지 기업인과 전문가 등 협력 필수인력의 방문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아세안+3(한·중·일), 동아시아정상회의(EAS) 등 다자 간 국제협력에는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 정부, 지방자치단체, 관련 기관 및 기업, 시민단체의 공조체제 강화도 필수적이다.
중국은 코로나19 위기를 ‘소프트 파워’ 강화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지방정부별로 국가를 맡아 책임지고 지원하고 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 창업자인 마윈은 세계 여러 국가에 의료물자를 제공하고 있다. 많은 나라가 한국의 민주적 방역 시스템 및 전염병 관리 노하우 공유와 진단키트 등 방역물품 제공을 요청하고 있으므로, 한국은 이에 적극 협조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우리는 수많은 위기를 극복한 경험과 저력을 갖고 있다. 1990년대 말 한국의 금융위기는 ‘불행을 가장한 축복’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코로나19 위기도 새로운 기회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우리의 방역·보건 체계와 경제 살리기가 급선무다. 총선을 빌미로 눈앞의 표만 좇아선 안 된다. 보다 큰 그림을 그리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신남방정책을 중단 없이 추진해야 한다. 글로벌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유동적인 상황이다. 국익을 확보하고 국제적 위상을 높일 ‘중견국 외교’가 빛을 발할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
김영선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前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
지난주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이 화상회의를 통해 코로나19의 보건·사회·경제적 영향을 평가하고 대응 방안을 협의한 것은 의미가 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G20의 역할이 컸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가 G20회의 개최를 주도적으로 제안한 것은 시의적절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경험과 경제 활성화 대책을 설명하고 △방역 경험 및 임상 데이터 공유 △치료제 및 백신 개발 협력 △보건·의료 취약국가 지원 및 개도국 경제 안정을 위한 협력을 강조했다. 특히 과학자·의료진·기업인 등 필수 인력의 이동을 허용하는 국제 교류 방안을 제시해 외교적 존재감을 과시했다.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보건·의료 문제를 넘어 엄청난 국제 정치·경제적 파장이 일 것으로 우려된다. 이미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될 수 있다는, 세계화의 취약성을 확인했다. 향후 탈(脫)세계화 등 국제질서 재편 바람이 몰아칠 수 있다. 또 글로벌 리더십을 둘러싸고 미·중 간 경쟁관계가 심화될 경우 한국, 아세안 등 중소국가들의 전략적 딜레마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신남방정책 전략·목표 재조정 필요
신남방정책도 시험대에 올랐다. 한국은 아세안과 ‘더불어 잘사는 사람 중심의 평화공동체’를 구현한다는 전략 목표 아래 2020년까지 교역 2000억달러, 인적 교류 1500만 명 수준의 협력관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신남방정책의 목표와 전략 재조정이 불가피해졌다. 무엇보다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중국은 지난달 20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중·아세안 특별 외교장관회의를 열어 협력 방안을 협의했다. 이미 몇몇 국가에 대한 의료진과 의료물품 지원을 늘리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20일 아세안과 화상 장관회의를 열었다.
우리의 방역과 경제 활성화가 우선이지만, 신남방정책이 모멘텀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세안은 1만 개 이상의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고, 수출 비중이 20%나 되는 지역이다. 또 50여만 명의 동포가 거주하고 있고, 연 900만 명의 한국인이 방문하는 지역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남방정책 기반 위에서 그리고 문 대통령이 G20 화상회의에서 제시한 협력 방안의 바탕 위에서 코로나19 대책을 검토해야 한다. 우선, ‘사람 중심의 상생번영’ 실현이 신남방정책의 핵심 가치인 만큼 방역 및 보건 인프라 지원, 의료물품 제공, 의료 역량 개발 및 기술 지원 등 우리의 능력 범위 안에서 최대한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적개발원조(ODA), 아세안 관련 펀드 등 모든 재원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코로나 위기서 새 기회 만들어야
또 글로벌 공급망의 다변화 및 재구조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상황이 정상화될 때까지 기업인과 전문가 등 협력 필수인력의 방문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아세안+3(한·중·일), 동아시아정상회의(EAS) 등 다자 간 국제협력에는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 정부, 지방자치단체, 관련 기관 및 기업, 시민단체의 공조체제 강화도 필수적이다.
중국은 코로나19 위기를 ‘소프트 파워’ 강화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지방정부별로 국가를 맡아 책임지고 지원하고 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 창업자인 마윈은 세계 여러 국가에 의료물자를 제공하고 있다. 많은 나라가 한국의 민주적 방역 시스템 및 전염병 관리 노하우 공유와 진단키트 등 방역물품 제공을 요청하고 있으므로, 한국은 이에 적극 협조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우리는 수많은 위기를 극복한 경험과 저력을 갖고 있다. 1990년대 말 한국의 금융위기는 ‘불행을 가장한 축복’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코로나19 위기도 새로운 기회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우리의 방역·보건 체계와 경제 살리기가 급선무다. 총선을 빌미로 눈앞의 표만 좇아선 안 된다. 보다 큰 그림을 그리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신남방정책을 중단 없이 추진해야 한다. 글로벌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유동적인 상황이다. 국익을 확보하고 국제적 위상을 높일 ‘중견국 외교’가 빛을 발할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
김영선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前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