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고달픈 이들의 희망 연대기…'내게는 홍시뿐이야'

'인간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을 닮아가기 마련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 되새길수록 진리다.

'
제12회 창비장편소설상을 받은 김설원 '내게는 홍시뿐이야'(창비 펴냄)에서 주인공이 읊조리는 말이다. 책을 읽는 독자도 공감할 수밖에 없다.

주거 공간은 사람의 경제 상태와 생활 수준은 물론 기분과 감정도 좌우한다.

좁고 낡고 열악한 집에서 사는 사람이 여유를 갖기는 어렵다. 반대로 햇살이 드는 넓고 쾌적한 집에서 거주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밝고 자신감이 넘칠 확률이 비교적 높을 것이다.

주인공은 '비가 오면 천장에 얼룩이 지고 수시로 정화조가 막히는 임대아파트에서' 살면서 '초라하고 의지박약한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으로 자랐다'고 한다.

올해 아카데미상을 휩쓴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주인공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환경이다. 이들은 장마가 지면 침수되는, 냄새나고 습한 반지하에 살면서 특유의 '냄새'를 풍긴다.

그리고 이들 가족 구성원은 공통으로 크고 작은 범죄 행위에 적절한 죄책감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장편소설에 나오는 주인공과 인물들은 '기생충'의 캐릭터들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 어른들이 파산 선고를 하자 열여덟 어린 나이에 어쩔 수 없이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아란'은 어떻게 해서든 성실하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삶을 꾸려나간다.

보증금도 없는 10만원 월세방에서 살며 학교까지 자퇴하고 나이를 숨긴 채 치킨집에서 일하지만, 유독 홍시를 좋아한 엄마가 떠오르자 없는 돈을 털어 가끔 홍시를 사 모으며 엄마를 기다린다.

치킨집 사장도 희망을 놓지 않는 인물이다.

지적장애인인 배다른 동생과 외삼촌이 베트남 아내와 사이에서 낳은 자식을 거둬 부양하는 40대 여성이다.

당장 쓰러질 것 같은 가난하고 숨 가쁜 삶이지만 이들 약자는 서로 의지하고 연대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 항해한다.

지난해 창비장편소설상 선정 당시 심사위원단은 "더없이 각박한 시절,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감 나게 들려주되, 당사자의 정동을 부각하는 이런 색다른 시선이 우리 소설의 지평을 한층 넓혀주리라 기대한다"고 평했다. 김설원은 지난 200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소설집 '은빛 지렁이', 장편소설 '이별 다섯 번', '나의 요리사 마은숙'을 펴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