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놀란 '사재기 없는 한국' 5가지가 있다

(1) 든든한 생필품 제조기반
(2) 세계 최강 온라인 쇼핑 시스템
(3) 골목골목 뻗은 촘촘한 물류
(4) 위기에 대한 남다른 면역력
(5) 성숙해진 시민의식도 한몫
< 꽉 차고 > 코로나19로 극심한 사재기가 벌어지고 있는 외국과 달리 한국에선 사재기가 없다. 1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휴지 등 생필품이 잔뜩 쌓여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우린 휴지 안 사도 돼. 집에도 마트에도 이렇게 많거든. 싱싱한 딸기도 많고, 해산물도 구경해봐.”

4년 전 미국 공군으로 한국에 배치돼 온 데이비드 로 씨는 얼마 전 부인과 두 아이를 데리고 장 보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마스크를 쓰고 손 소독을 한 뒤 마트 매대마다 가득 차 있는 손 세정제와 휴지, 생수 등을 찍어 올렸다. 이 영상은 조회 수 91만 건을 기록했다.요즘 주한 외국인 중 데이비드 로 씨처럼 유튜브 브이로그나 SNS를 통해 ‘코로나19 시대에 한국에서 장보기’ 영상물을 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영상에는 어김없이 “믿을 수 없다”는 댓글이 달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 곳곳에서 사재기 광풍이 불고 있는 것과 너무 대조적이어서다.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선 휴지와 파스타, 시리얼 등을 사기 위해 다툼을 벌이고, 총기까지 사재기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왜 이런 모습을 보기 힘들까.


한국에서 사재기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코로나19가 본격 확산한 2월 17일 이후 생필품 수요가 일부 온라인몰에서 반짝 늘었다. 김수혜 쿠팡 전무는 “온라인 주문이 폭주하고 배송 지연 등에 대한 소비자 항의가 있었으나 1주일을 채 넘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사재기 무풍지대’가 된 가장 큰 이유로 든든한 제조업 기반을 꼽는다.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47%다. 중화학 등 제조업 기반이 중국과 베트남에 공장을 이전한 사례가 많긴 하지만 대부분 식품 기업들은 아직 한국에 기반을 두고 있다. 50년 안팎의 역사를 지닌 굵직한 식품 기업들이 자체 브랜드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다른 생필품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식품과 화장지, 생수 등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미리 사 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온라인 주문배송 시스템이 잘 갖춰진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전체 유통에서 온라인 쇼핑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28.3%(매출 기준)였다. 세계 최상위 수준이다. 거래액도 120조원을 돌파했다. 초고속 통신망과 모바일 기기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모바일 쇼핑도 급증세다. 온라인 쇼핑 거래액 중 모바일 쇼핑 비중이 59.7%다.

이렇게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초고속으로 배달받는다. 쿠팡과 마켓컬리 등 온라인 배송업체들은 지난 4~5년간 치열한 ‘배송 전쟁’을 벌였다. 전국 곳곳에 물류센터를 짓고 ‘반나절 배송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생활물류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전날 밤에 주문하면 새벽에 물건이 도착한다. 24시간 쉬지 않고 택배 배송이 가능한 세계 유일한 나라다. 굳이 생필품을 사러 매장으로 달려갈 필요가 없다.성용준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국은 빠르게 ‘플랫폼 사회’로 변하면서 소비 측면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체력이 탄탄해졌다”며 “위기 상황에도 사람들이 공포감을 덜 느끼게 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온라인 쇼핑을 안 하더라도 전국 골목골목까지 뻗어 있는 유통망을 통해 손쉽게 쇼핑할 수 있다는 점도 한국만의 강점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5대 편의점 점포 수는 4만4744개에 달한다. 일본(5만5620개)보다 적지만 인구 1인당 편의점 수는 세계 1위다. CNN은 “한국은 주요 도심에 100m마다 편의점이 있어 휴지나 생수를 사재기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라고 소개했다.

최명화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는 “한국 중장년층이라면 북한 침략이나 전쟁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또는 전염병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사재기에 동참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라며 “한국인들은 이런 경험을 통해 사재기를 해봐야 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한층 성숙해진 시민의식도 사재기 없는 한국을 만든 숨은 요인이다. 한국인들은 “의료진이나 더 필요한 사람에게 주자”며 ‘마스크 안 사기 캠페인’을 벌였고, 적극적으로 개인 방역에 동참하면서 상호 신뢰 시스템을 쌓았다. 미국, 호주 등에서처럼 ‘마스크 필터와 휴지가 같은 소재다’라거나 ‘앞으로 2주간 물과 생필품 공급이 중단된다’는 등의 가짜 뉴스도 돌지 않았다. 희망브리지 재해구호협회에는 지난 10년간 기부금 모금 역사상 가장 많은 920억원 이상이 모였다. 협회 관계자는 “기부 신청이 끊이지 않아 모금 기간을 1개월 연장했다”며 “침착하게 위기를 함께 극복해 나가자는 사회적인 연대가 전염병 확산 속에서도 큰 혼란을 막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