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인간의 나르시시즘, 지구 종말 부른다

이기적 유인원
21세기 초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료되기 전에 생물학자들은 고도 지능을 갖춘 인간의 유전자가 10만 개는 될 것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3만 개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나자 깜짝 놀랐다. 미개한 선충의 유전자도 2만 개이고, 양파 유전자는 인간의 다섯 배나 됐다. 각 생명체의 유전자 작동 원리도 비슷했다. 다만 뇌 크기에서 큰 차이가 났다. 뇌가 큰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고 폭력 성향도 있어 마치 이 땅이 자신의 소유인 것처럼 제멋대로 행동해 왔다. 7만여 년 전 초기 인류는 활과 화살을 만들어 사냥하면서 매머드, 검치호랑이 등을 멸종시켰다. 이후 환경 파괴에도 앞장서 인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멸종을 재촉하고 있다.

미국 생물학자 니컬러스 머니는 《이기적 유인원》에서 “인간은 이기심을 근간으로 진화를 거듭한 결과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걷게 됐다”며 “인간은 신과 같은 ‘호모 데우스(Homo Deus)’가 아니라,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호모 나르키소스(Narcissus)’라는 학명으로 불려야 한다”고 주장한다.저자는 인간의 사고방식에서 자아도취와 자기파괴를 일컫는 ‘나르시시즘’이 발견된다고 지적한다. 인간이 과학을 발전시켰지만 그 기술이 자신을 포함한 생태계와 문명을 파괴하는 원천이 되고 있다는 의미다. 저자는 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들며 인간의 본질을 성찰한다. 인간이 특수한 존재로 창조됐다는 기독교적 관점을 배격하고 오로지 자신을 위해 다른 모든 생명체를 희생시켜온 인간의 실체를 냉철하게 관찰한다.

저자는 “인류가 발상지인 아프리카에서 뛰쳐나오는 순간, 우리 유전자에는 기후를 파괴하려는 본성이 새겨졌다”고 강조한다. 제목에 ‘유인원’을 붙인 것은 인류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의미에서다. 저자는 “인간은 고대 바다의 해면동물에서 태동했고, 유전학적으로는 버섯과도 큰 차이가 없다”고 거듭 강조한다.

저자는 “인간이 ‘지혜로운 인간’이란 의미의 ‘호모 사피엔스’로 진정 거듭나려면 성장지상주의를 단호하게 멈추고 지구를 회생시키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김주희 옮김, 한빛비즈, 220쪽, 1만7000원)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