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뒤늦게 마스크 쓰는 美·유럽의 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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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쓴 동양인 혐오하더니지난달 31일 오후(현지시간) 영국 런던 템스강 남북을 잇는 지하철 빅토리아라인. 필수적인 출퇴근 등을 제외한 외출금지령에 내부는 한산한 모습이었다. 승객 중 절반 이상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3월 중순만 하더라도 마스크를 착용한 현지인을 거의 찾을 수 없었던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안이한 위생인식, 코로나 악화시켜
강경민 런던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미국과 유럽 각국 정부는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거나 권장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와 체코는 슈퍼마켓 등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독일 중부 튀링겐주(州) 예나시도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모든 미국인이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권장하겠느냐’는 질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하길 원한다면 분명히 해로운 것은 없다. 그렇게 하라고 말하겠다”고 했다.지난달 중순만 해도 미국과 유럽에서 마스크를 쓰는 사람 열에 아홉은 동양인이었다. 통상 서구사회에서 마스크는 의료진과 환자만 쓴다는 인식이 강하다. 테러리스트들이 얼굴을 가리기 위해 복면을 많이 하는 것도 마스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켰다.
보건당국의 권고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 등 아시아 각국 보건당국은 일반인에게 마스크 착용을 권장했다. 반면 미국과 유럽 보건당국은 마스크가 코로나19 감염을 예방하는 데 입증된 효과가 없다는 주장만 고수했다. 의료진을 위한 마스크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일반인들의 수요를 억제하기 위한 의도였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렇다 보니 마스크를 쓴 동양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자녀에게 마스크를 일부러 씌우지 않는 한인 교민들이 적지 않았다. 마스크를 썼다가 학교에서 현지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마스크 착용이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데 얼마나 효과적인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없는 건 맞다. 다만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선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감염자로부터 전염을 방지하기 위한 마스크 착용은 상식이 아닐까. 그럼에도 마스크는 동양인이나 쓴다는 안이한 위생 인식이 미국과 유럽에서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스크 공급을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유럽에선 지금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평소보다 몇 배나 되는 돈을 내야 한다. 이마저도 구하기 어렵다. 동양인을 얕보고, 인종차별을 서슴지 않았던 서구사회의 오만이 코로나19의 대규모 확산을 불러온 중요한 배경일 수도 있다. 이 와중에도 미국과 유럽에서 동양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다는 건 또 다른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