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지도 모르고 찍었다"…재외국민 투표는 '깜깜이 선거'

후보·공약·선거구도 잘 모른 채 참여…정당보고 지역구 투표
코로나19로 선거인 절반만 투표 기회…"온라인 투표 도입해야"

제21대 국회의원 선출을 위한 해외 거주 유권자들의 투표(재외투표)가 1일 시작된 가운데 후보가 누군지도 모른 채 투표하는 경우가 많아 '깜깜이 선거'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국내에서는 투표일 전 유권자 가정으로 각 정당과 후보자가 제출한 선거 공보가 배달되지만, 재외선거인에게는 이메일로 투표소 위치와 투표 기간을 안내하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정책·공약 알리미(http://policy.nec.go.kr)에서도 정당 정책을 볼 수 있지만, 선거공보는 오는 6일까지 진행되는 재외투표가 끝나갈 무렵인 5일부터 열람할 수 있다.

투표소에도 지역구 의원 후보의 기호와 소속 정당, 이름만 적힌 후보자 명부가 비치돼 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재외투표에 참여한 것이 이번이 네 번째인 한 교민은 2일 "투표하고 나왔지만, 내가 찍은 후보 이름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정당을 보고 투표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해외에서 소중한 한표를 행사한 다른 교민은 "내가 속한 선거구가 '갑', '을' 가운데 '갑'이라는 것을 투표소에 와서야 알았기 때문에 당연히 후보의 공약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또 "비례정당은 처음 보는 명칭이 수두룩하고 정당 수가 너무 많아 익숙한 정당을 선택했는데 제대로 기표했는지 자신이 없다"고 밝혔다.
동남아시아의 한 국가에서 재외투표를 관리하는 선거관도 "이번이 다섯번째 재외투표인 만큼 여러 가지 허점을 보완할 때가 된 것 같다"면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재외투표가 정당 투표 이상의 의미를 갖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재외투표를 신청하면 이메일로라도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투표소를 찾기 전에 최소한의 정보는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재외투표 선거인(17만1천959명) 가운데 50%인 8만6천40명만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게 돼 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특히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한 국가 또는 지역 봉쇄 등으로 51개국 86개 재외공관의 선거사무가 이미 중지됐고, 재외투표가 이뤄지는 곳에서도 이동에 제약이 있는 경우가 많아 온라인 투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미주·대양주·일본·유럽·아시아 등이 참여한 재외국민유권자연대는 지난달 31일 성명을 내고 "우편·인터넷 투표 제도를 진작에 도입했다면 코로나19로 투표를 못 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번 총선으로 꾸려지는 21대 국회에서는 무엇보다 우선해 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상호 하노이한인회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재외선거인의 절반이 투표 기회를 잃었고, 투표가 가능한 지역에서도 투표율이 절반을 훨씬 밑돌 것으로 우려된다"면서 "이런 상황이면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는 투표라고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또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결국에는 온라인 투표로 가야 할 것"이라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치권이 심각하게 고민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