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4) 미국의 정치력을 회복해야 할 때다

윌리엄 번즈 카네기국제평화기금 대표
전세계로 확산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모든 걸 바꿔놓고 있습니다. 의료 시스템은 물론 정치 경제 예술 등을 가리지 않습니다. 우리 생활습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가 지나간 뒤 세계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코로나 이후’를 조망하는 명사 칼럼을 최근 게재했습니다.

WSJ와 독점 제휴를 맺고 있는 한국경제신문이 화제를 모았던 이 칼럼 17개를 소개합니다.▶ 월스트리트저널 '포스트 코로나' 칼럼 전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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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1919년 봄 주요 국가의 핵심 인물들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 평화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프랑스 베르사유에 모였다. 당시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스페인독감에 걸려 침대에 누워 있었다. 윌슨 대통령의 주치의는 한때 "세계는 균형 상태에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끔찍한 유행성 독감은 세계 질서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한 세기가 지난 뒤 또다시 세계 정세의 격변기에 우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란 위협과 마주쳤다. 정치, 경제, 기술, 환경 등에서 초대형 위기가 닥쳤다. 중국이 부상하고 미국은 약해졌다. 세계 정치·경제 패권의 중심이 서양에서 동양으로 이동하고 있다. 국수주의와 권위주의가 부활하고 민주주의가 역행하는 듯하다. '개방'과 '폐쇄' 사이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기후변화가 실존적 위협으로 부각됐다. 세계화라는 순풍은 강력한 역풍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끔찍한 인적,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충격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취약한 상태인지 확연히 드러날 것이다.

이 위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중국에 이르기까지 ‘자유 국제질서’는 끝났다는 확신이 강해질 것이다. 강자들은 새로운 기술에 힘입어 더욱 강해질 것이다. 편협한 국수주의자들은 외국인 혐오증을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이번 사태로 정부의 역할 마비를 경험한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은 자신감이 떨어질 것이다.

연결은 강점이 아닌 약점이 되고 있다. 이미 약해진 유럽연합(EU) 국가 간 교류에도 충격이 예상된다. 분쟁과 질병에 시달려온 중동과 아프리카는 더 큰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은 오랜 기간 영향력이 약해져왔다. 앞으로는 더 균열될 수도 있다. 미국 안보를 지탱해온 동맹 관계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에 따른 인명 피해와 자원 부족, 미숙한 대응으로 인도주의는 위기에 처했다.코로나19가 일으킨 충격으로 우리는 눈앞의 도전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됐다. 미국의 정치력은 이제 시험대에 올라 있다. 미국이 한때 누렸던 세계 패권을 쉽게 회복할 것이란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과 조지 H.W. 부시 대통령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의 힘을 국제사회에 적용하는 데 있어 과거의 비전과 규율을 되살릴 수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전형을 재건해야 한다. 이를 통해 동맹들의 신뢰와 경쟁국들의 존중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하지만 국가적 목표 의식과 자신감을 회복해야 한다.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를 위한 피난처를 찾아낼 수 있는 기회가 우리 앞에 있다.

원제=A Moment to Renew American Statesmanship
정리=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