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도 인파로 붐비는 英…"날씨가 최대 변수" [현장에서]

영국 런던의 낮 최고기온이 19도까지 오른 4일(현지시간) 오후. 템스강변 인근 둔치와 도심 주요 공원은 완연한 봄날씨를 맞아 나들이를 나온 시민들로 북적였다. 주말을 맞아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하는 시민들이 대부분이었다. 공원 벤치나 잔디밭에서 햇볕을 쬐면서 휴식을 취하는 시민들도 곳곳에서 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영국 정부가 내린 외출금지령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영국 등 유럽 각국에서 날씨가 코로나19 확산의 새로운 변수가 되고 있다. 영국 런던에선 낮 최고기온이 15도를 넘는 맑고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로 유명한 런던에선 매우 이례적이다. 이렇다보니 외출금지령으로 집 안에 머물러 있던 시민들이 대거 외출을 하고 있다는 것이 치안당국의 설명이다. 런던 경시청은 “날씨야말로 외출금지령에 있어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말부터 영국 등 유럽에서 일광절약시간제(서머타임)가 일제히 발효되면서 낮 시간이 길어진 것도 시민들의 외출이 늘어난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힌다. 서머타임제는 해가 일찍 뜨는 여름철에 표준시간을 1시간 앞당겨 자연일광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제도다.

영국 정부는 지난달 23일부터 전 국민을 대상으로 3주간 외출금지령을 내렸다. 다만 △의약품·식료품 구입 △병원 진료 △1일 1회 운동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경우의 출퇴근 등 네 가지 경우에는 예외 사항을 적용했다. 국민들의 운동을 위해 공원은 개방하되, 동거인을 제외하고 두 명 이상 모이는 행위를 금지했다. 배우자 등 동거인이 아니라면 무조건 혼자서 다녀야만 한다는 뜻이다.

런던 도심의 주요 공원은 평일과 주말을 막론하고 운동과 산책을 나온 시민들로 북적인다. 벚꽃 등 봄꽃이 만개하면서 이를 구경하러 온 시민들도 많다. 펍(pub)과 음식점 및 박물관과 미술관 등 모든 공공장소가 폐쇄돼 오갈 데 없는 시민들이 공원으로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욱이 반려동물을 많이 키우는 영국 가정에선 공원 산책은 필수다.
런던 경찰은 주요 공원마다 순찰을 돌며 정부가 내린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감시하고 있다. 공원에서 두 명 이상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 즉시 해산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운동 등을 위한 외출을 허용한 상황에서 경찰도 공원에 사람이 몰리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런던뿐 아니라 영국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공영 BBC는 영국 남부 휴양도시인 브라이튼 해안가에선 많은 사람들이 몰려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무색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마이클 고브 영국 국무조정실장은 4일(현지시간) 정례 기자회견에서 “시민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무조건 존중해야 한다”며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질병의 확산을 제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맷 핸콕 보건장관도 전날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은 이번 주말에도 집에 머물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 보건당국에 따르면 4일(현지시간) 기준 누적 확진자는 4만1903명이다. 전날 대비 3735명 늘었다. 사망자는 전날보다 708명 증가한 4313명이다. 영국의 하루 코로나19 사망자 규모는 1일 569명에서 2일 684명, 3일 708명으로 계속 확대되고 있다. 특히 이날 사망자 중에선 다섯살 어린이도 포함됐다. 지금까지 영국 코로나19 사망자 중 가장 어리다. 영국 정부는 상황이 지금보다 더 악화된다면 더욱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계획이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처럼 필수업종을 제외한 모든 사업장을 폐쇄하거나, 공원을 전면 폐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