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불좌상·백자 항아리·책가도 병풍…봄날, 古미술 향기에 취하다

다보성갤러리 '2020 고미술 특별전' 6일 개막
서울 인사동 다보성갤러리에서 6일 개막하는 고미술 특별전에 출품된 ‘백자철화운룡문호’.
입이 좁고 어깨는 넓으며 밑이 홀쭉하게 생긴 매병(梅甁)은 12세기부터 청자, 백자, 분청 등으로 만들어졌다. 문양과 기법도 다양했다. 음각·상감·철화·철채(鐵彩) 등의 기법으로 연꽃·모란·국화·구름·학·매화·대나무·포도·당초·버드나무·물새 등 다양한 대상을 그려넣었다.

그런데 이 매병은 특이하다. 어깨와 몸체 상단까지 인화문(印花紋)으로 채워넣고 앞쪽에는 사람 얼굴을, 뒤쪽에는 머리카락 같은 것을 백상감으로 새겨넣었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코는 우뚝하며, 입은 윗니와 아랫니를 활짝 드러낸 모습이다. 해학적으로 표현된 얼굴이 신라 와당(瓦當)의 인면문(人面紋)과 비슷하다. 서울 경운동 수운회관의 국내 최대 고미술 전문 화랑인 다보성갤러리가 6일 개막하는 고미술 특별전 ‘봄, 옛 향기에 취하다’에서 공개하는 ‘분청자상감인면문매병’이다. 15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사람 얼굴을 넣은 도자기는 흔치 않아 귀중한 유물로 평가된다.이번 특별전에는 이 매병을 비롯한 금속·도자기 유물 300여 점과 궁중채색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책가도 8폭 병풍 등 서화 70여 점, 궁중에서 사용했던 주칠 3층 책장 등 고가구와 민속품 120점 등 500여 점이 전시된다. 갤러리 1층과 2층의 바닥 전시대는 물론 벽면까지 작품들로 빼곡하다.

철불좌상
1층 전시실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안쪽 벽 앞에 있는 철불좌상이다. 통일신라 말부터 제작되기 시작해 고려시대에 널리 유행한 철불은 정교하고 화려하게 장식된 청동불에 비해 거칠고 토속적인 성격이 강했다. 청동 재료를 구하기 쉽지 않았던 지방 호족들이 비교적 큰 규모로 철불을 만들었다. 높이 110㎝의 이 철불좌상은 나발에 큼직한 육계, 잘 정돈된 안면,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옷자락을 늘어뜨린 선 등의 뛰어난 표현이 통일신라 전통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다.고려시대 청자여래좌상과 청자여래입상, 고구려 유물로 보이는 토기삼존불, 조선시대 백자호 등 고가의 국가지정문화재급 도자기 유물도 많다. 경주 석굴암 여래좌상을 닮은 높이 35.5㎝의 청자여래좌상은 13세기 전반 전남 강진 사당리요 등에서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미타여래의 수인(手印)을 한 청자여래입상은 높이 48.0㎝로, 몸체에 두른 장신구 문양을 흑과 백의 상감으로 새겨넣었다.

‘백자청화운룡문호’는 어깨와 몸통에 두 마리의 용을 배치한 게 특징이다. 여의주를 움켜쥔 용과 여의주를 잡으려는 용의 역동적인 모습을 청화로 선명하게 표현했다. 18세기 경기 광주 분원리 관요에서 제작한 명품이라고 한다. 17세기 광주 지월리 요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회백색의 ‘백자철화운룡문호’는 몸체가 둥글고 구연부는 예각을 이뤘다. 몸체 전면에 구름 속에서 여의주를 집어 삼키려는 용의 빠른 필치로 그려넣었다.

어깨의 네 곳에 각이 진 고리를 붙이고 뚜껑의 꼭지에는 네 개의 구멍이 뚫린 ‘백자유개사이호’는 크기가 다른 내호와 외호로 구성된 한 쌍이다. 왕실의 태항아리로 추정되는 조선 전기의 수작으로, 내호와 외호가 온전히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물어 매우 귀한 자료다. 티끌이나 흠 하나 없이 깨끗한 유백색의 조선 전기 백자호, 몸체에 쏘가리 같은 물고기를 철화로 그려넣은 ‘분청자철화어문병’도 주목된다.‘책가도 8폭 병풍’은 8폭 병풍의 전면을 하나의 책가도(冊架圖)로 이어놓고 폭마다 3개 층에 책과 도자기, 문방사우 등을 그려넣은 조선시대 궁중화다. 궁중 화원들이 엄격함과 단정함 속에 재치와 변화를 추구해 조선 왕실 문화의 격조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조선 중기 화가 허주 이징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금니산수도(金泥山水圖)’, 추사 김정희의 ‘묵죽도(墨竹圖), 심산 노수현의 ‘청녹산수화’, 대원군이 그린 병풍과 코끼리가 등장하는 12폭 궁중화 호렵도 나왔다.

주칠삼층책장, 교자상, 나전대모상을 비롯한 궁중 고가구들과 서류함, 반닫이, 나주반, 서안과 경상 등 옛 일상 가구들도 다양하게 선보인다. 2층 구석에 있는 ‘목조 소녀상’은 팔봉 김기진의 형이자 한국 미술계에 최초로 서양조각을 도입한 정관 김복진(1901~1941)이 37세 때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김복진의 조각 작품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미술계의 관심을 끌 전망이다. 김종춘 다보성갤러리 회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고통받고 있는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전시회를 마련했다”며 “전시 수익금 중 일부는 코로나19 피해 지역의 의료지원을 위해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오는 29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