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국립국어원, '그들만의 우리말' 만들기

글로브월→의료용 분리벽, 다크웹→지하웹
실제 언어 사용자들은 ‘새말’ 존재조차 몰라
‘쉬운 말’이 ‘어려운 말’로 전락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 마련된 워크스루 방식 선별진료소에서 3일 오후 한 시민이 검체채취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은 ‘글로브월’과 ‘다크웹’을 대체할 쉬운 우리말로 ‘의료용 분리벽’과 ‘지하웹’을 선정했다.”

문체부가 6일 발표한 보도자료의 첫 줄이다. 글로브월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같은 전염병에 걸렸거나 면역력이 약해진 환자 진료를 위해 의료진이 비대면 접촉을 할 때 쓰는 장비다. 투명한 벽에 구멍을 뚫어 의료용 장갑을 설치한 형태다. 다크웹은 특정 프로그램을 사용해야만 접속할 수 있는 웹을 가리킨다. ‘N번방 사건’으로 유명해진 정보기술(IT) 업계 전문용어다. 포르노 유통이나 아동·청소년 성매매, 무기 거래, 마약 밀수 등 불법 사이버 범죄에 악용될 때가 많다.

글로브월이나 다크웹 같은 단어들은 최근 한국 사회를 크게 뒤흔든 사건과 연관돼 있다. 한국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로선 자연히 해당 영문 원어를 먼저 접한다.

하지만 문체부와 국립국어원은 “우리가 외국어 단어를 고친 후 발표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에 여전히 갇혀 있는 모양새다. 마치 “‘짜장면’과 ‘자장면’ 중 어느 것이 맞는 단어인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우리말로 어떻게 바꿔야 하느냐”는 논란과 유사하다. 실제 언어 사용자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모른다. ‘코호트 격리’를 ‘동일 집단 격리’라 고쳐도, ‘드라이브 스루’를 ‘승차 진료’ 또는 ‘차량 이동형 진료’라고 다듬었다 해도 언어 사용자들은 신경쓰지 않는다. 도리어 ‘우리말로 고친 단어’를 낯설어 한다. 문체부와 국립국어원에서 지난해 10월 만든 ‘새말모임’도 이런 차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두 기관에 따르면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국어 신어가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 대체어를 제공하기 위해 국어 전문가 외에 외국어, 교육, 홍보·출판, 정보통신, 언론 등 다양한 분야 사람이 참여하는 위원회로 누리소통망(SNS)을 통해 운영하는 곳”이다. 상명하복 형식으로 단어를 고쳐 쓰라는 고정관념이 짙게 배어난다.

외국어 단어를 한국 현실에 맞게 고쳐 쓰는 건 물론 좋은 일이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언어 사용자들이 주체적으로 공감하고 널리 퍼질 때 가능하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