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假定)이 다 깨졌다…경제정책 싹 바꿔라 [여기는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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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경제성장률은 3.2%를 기록했다. 2016년 성장률 2.9%보다 0.3%포인트 높았다. 현 정부는 의기양양했다. 이게 결국 독(毒)이 되고 말았다. 검증되지 않은 공약과 정책 집행이 더욱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친(親)노동, 탈(脫)원전 등. 2018년 성장률은 2.7%로 내려갔다. 경제가 골병들고 있다는 강한 신호를 보냈지만 현 정부는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 미·중 충돌이 더해졌고, 재정 총동원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성장률은 2.0%로 주저앉고 말았다. 이제는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올해 성장률은 마이너스로 미끄러질 판이다.
현 정부가 성장률이 이 정도로 추락할 것을 미리 알았다면, 설익은 공약과 정책을 그대로 밀어붙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현 정부는 명시적으로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공약과 정책의 전제로 삼은 ‘결정적 가정’을 갖고 있었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최소한 유지되거나 좋아질 것이라는 가정이다. ‘소득주도성장’이라고 했지만 실은 지속적인 성장을 전제로 한 분배정책이었다. 경제가 계속 성장할 것으로 보고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하고, 주 52시간 근로제를 강행한 것이다. 경제는 ‘가정의 학문’이라는 말이 있다. 경제모델은 이런저런 가정을 도입해 ‘If’와 ‘Then’의 논리적 구성을 취한다. 워낙 가정이 넘치다 보니 경제학계 내부에서도 종종 가정이 현실에 맞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누군가 가정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어떤 이론이 맞아떨어진다면 가정이 현실과 얼마나 부합하느냐는 문제가 안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가정도 가정 나름이다. 수학적 경제모델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현실의 단순화에서 오는 가정의 한계는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모델과 정책의 결론을 좌우할 정도의 ‘결정적인 가정’이 틀리게 되는 경우는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결정적인 가정’이 빗나가면 모델도, 정책도 더 이상 유효할 수 없다. 경제모델과 정책은 한번 선택하면 끝나는 게 아니다.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변해가는 ‘동적(動的)인 과정’이다. 경제정책과 모델이 다양한 이유다. 문제는 정치의 세계다. 정권 교체는 경제정책의 변화를 동반한다. 과거 정부와 다르다는 경제정책은 정권을 지지하는 경제학자들이 과학적으로 보이도록 만들어낸 그럴듯한 모델과 실증연구로 포장된다. 모델은 금방 도그마로 굳어진다. 지지세력은 정권의 경제모델을 ‘하나의 모델’이 아니라 ‘유일한 모델’로 떠받들기 시작한다. 현실이 변하고 맥락이 달라져 가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데도 정권이 모델을, 정책을 끈질기게 고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비극은 이미 달라진 현실을 경제모델과 정책에 억지로 구겨넣는데서 비롯된다.
정권 출범 당시 경제성장률이 최소한 유지되거나 좋아질 것이라는 ‘결정적 가정’은 완전히 깨졌다. 문재인 정부가 이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경제대책을 아무리 쏟아내도 한계가 있다. 가정이 다 깨진 기존의 경제정책에 대한 미련 때문에 우왕좌왕하거나 번지수를 잘못 읽고 엉뚱한 곳에서 시간을 허비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 임금을 올려 소비를 진작한다는 소득주도성장, 대기업·중소기업·자영업자 간 적대감을 조장하는 공정 경제, 기울어진 운동장이 돼버린 노동정책 등은 코로나19로 생존의 위기에 직면한 기업들을 더욱 벼랑으로 내몰 뿐이다.
코로나19 극복대책이 방향을 제대로 잡으려면 기존 경제정책의 전환 선언이 불가피하다. 지속적인 성장과 지불능력 창출을 가정했던 최저임금 인상은 경제위기 상황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장미빛 가정 속에 일자리 창출과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던 획일적인 주 52시간 근로제의 일시 유예 결단도 빠를수록 좋다. 도입 당시의 가정과 달리 산업이 줄줄이 무너지는 판국에 자살행위나 다름없게 된 기업 규제들도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 상위 대기업의 법인세율 인상 또한 그 때의 가정이 더 이상 맞지 않게 됐으면 원상으로 되돌려야 정상이다. 당초 가정에서 너무 벗어나 일파만파의 부작용을 낳고 있는 탈원전 정책의 재검토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불행히도 현 정부는 이 대목에만 이르면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기업들이 코로나19발(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정책 전환을 요청하자 정권 지지세력이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기업들이 제 살길만 찾고 있다” “기업들이 이기적이다” “기업 지원 시 고용유지 조건을 걸어라”는 주장들이 쏟아지고 있다. 정권이 반(反)기업 정서의 문턱을 넘지 못한채 아직도 지지세력의 눈치만 살피는 형국이다.
기업이 무너지고 대량 실업이 발생하면 경제 위기는 그대로 정치 위기, 사회 위기로 직행하게 된다. 일자리가 마지막 방파제라면 ‘노·사·정 대타협’은 지금이 절호의 기회 아닌가? 고용 유지가 중요하다면 정부는 기업에 페널티가 아니라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면 감세와 규제 혁파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문재인 정부는 가정이 다 깨져 더는 유효하지 않게 된 기존의 경제모델과 정책을 언제까지 붙들고 있을 텐가? 코로나19 이후 완전히 새로운 경제환경이 도래해도 계속 그럴 것인지 묻고 싶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ahs@hankyung.com
현 정부가 성장률이 이 정도로 추락할 것을 미리 알았다면, 설익은 공약과 정책을 그대로 밀어붙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현 정부는 명시적으로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공약과 정책의 전제로 삼은 ‘결정적 가정’을 갖고 있었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최소한 유지되거나 좋아질 것이라는 가정이다. ‘소득주도성장’이라고 했지만 실은 지속적인 성장을 전제로 한 분배정책이었다. 경제가 계속 성장할 것으로 보고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하고, 주 52시간 근로제를 강행한 것이다. 경제는 ‘가정의 학문’이라는 말이 있다. 경제모델은 이런저런 가정을 도입해 ‘If’와 ‘Then’의 논리적 구성을 취한다. 워낙 가정이 넘치다 보니 경제학계 내부에서도 종종 가정이 현실에 맞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누군가 가정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어떤 이론이 맞아떨어진다면 가정이 현실과 얼마나 부합하느냐는 문제가 안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가정도 가정 나름이다. 수학적 경제모델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현실의 단순화에서 오는 가정의 한계는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모델과 정책의 결론을 좌우할 정도의 ‘결정적인 가정’이 틀리게 되는 경우는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결정적인 가정’이 빗나가면 모델도, 정책도 더 이상 유효할 수 없다. 경제모델과 정책은 한번 선택하면 끝나는 게 아니다.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변해가는 ‘동적(動的)인 과정’이다. 경제정책과 모델이 다양한 이유다. 문제는 정치의 세계다. 정권 교체는 경제정책의 변화를 동반한다. 과거 정부와 다르다는 경제정책은 정권을 지지하는 경제학자들이 과학적으로 보이도록 만들어낸 그럴듯한 모델과 실증연구로 포장된다. 모델은 금방 도그마로 굳어진다. 지지세력은 정권의 경제모델을 ‘하나의 모델’이 아니라 ‘유일한 모델’로 떠받들기 시작한다. 현실이 변하고 맥락이 달라져 가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데도 정권이 모델을, 정책을 끈질기게 고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비극은 이미 달라진 현실을 경제모델과 정책에 억지로 구겨넣는데서 비롯된다.
정권 출범 당시 경제성장률이 최소한 유지되거나 좋아질 것이라는 ‘결정적 가정’은 완전히 깨졌다. 문재인 정부가 이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경제대책을 아무리 쏟아내도 한계가 있다. 가정이 다 깨진 기존의 경제정책에 대한 미련 때문에 우왕좌왕하거나 번지수를 잘못 읽고 엉뚱한 곳에서 시간을 허비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 임금을 올려 소비를 진작한다는 소득주도성장, 대기업·중소기업·자영업자 간 적대감을 조장하는 공정 경제, 기울어진 운동장이 돼버린 노동정책 등은 코로나19로 생존의 위기에 직면한 기업들을 더욱 벼랑으로 내몰 뿐이다.
코로나19 극복대책이 방향을 제대로 잡으려면 기존 경제정책의 전환 선언이 불가피하다. 지속적인 성장과 지불능력 창출을 가정했던 최저임금 인상은 경제위기 상황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장미빛 가정 속에 일자리 창출과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던 획일적인 주 52시간 근로제의 일시 유예 결단도 빠를수록 좋다. 도입 당시의 가정과 달리 산업이 줄줄이 무너지는 판국에 자살행위나 다름없게 된 기업 규제들도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 상위 대기업의 법인세율 인상 또한 그 때의 가정이 더 이상 맞지 않게 됐으면 원상으로 되돌려야 정상이다. 당초 가정에서 너무 벗어나 일파만파의 부작용을 낳고 있는 탈원전 정책의 재검토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불행히도 현 정부는 이 대목에만 이르면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기업들이 코로나19발(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정책 전환을 요청하자 정권 지지세력이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기업들이 제 살길만 찾고 있다” “기업들이 이기적이다” “기업 지원 시 고용유지 조건을 걸어라”는 주장들이 쏟아지고 있다. 정권이 반(反)기업 정서의 문턱을 넘지 못한채 아직도 지지세력의 눈치만 살피는 형국이다.
기업이 무너지고 대량 실업이 발생하면 경제 위기는 그대로 정치 위기, 사회 위기로 직행하게 된다. 일자리가 마지막 방파제라면 ‘노·사·정 대타협’은 지금이 절호의 기회 아닌가? 고용 유지가 중요하다면 정부는 기업에 페널티가 아니라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면 감세와 규제 혁파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문재인 정부는 가정이 다 깨져 더는 유효하지 않게 된 기존의 경제모델과 정책을 언제까지 붙들고 있을 텐가? 코로나19 이후 완전히 새로운 경제환경이 도래해도 계속 그럴 것인지 묻고 싶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