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가게는 장사하는데…우리만 죽으라고요?"
입력
수정
지면A2
'사회적 거리두기' 2주 연장했지만…6일 낮 12시 서울 관악구의 한 헬스장. 낮 시간인데도 회원 10여 명이 땀을 흠뻑 흘리며 운동을 하고 있었다. 지난달 22일부터 휴업하던 이곳은 이날 2주 만에 문을 다시 열었다. 신규 회원은 없지만 기존 회원의 계약 해지가 자꾸 늘어서다. 이곳을 운영하는 임모씨(39)는 “같은 상가에 있는 발레와 요가 학원이 버젓이 운영하는 것을 보고 영업을 재개했다”고 말했다.
다시 문 여는 골목 상가
모호한 기준에 현장 혼란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2주 더 연장한 첫날, 정부 권고에도 서울 헬스장과 요가·필라테스 등 체육시설은 곳곳에서 닫았던 문을 다시 열었다. 지난 주말 밤 강남 이태원 홍대 등 서울의 대표적 유흥가는 영업을 재개한 클럽 등에 가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업주들은 “우리 가게만 쉬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2주 더 문을 닫았다가는 폐업할 지경”이라고 입을 모았다.헬스장 속속 영업 재개
전국 74개 지점을 보유한 피트니스업체 ‘스포애니’는 2주간 영업을 중단하다 이날 문을 다시 열었다. “운영을 재개해달라”는 회원들 요청에 따른 조치다. 대신 마스크 의무 착용 등 여덟 가지 정부 지침에 맞춰 운영하기로 했다. 마포구 A아파트는 보름간 닫았던 헬스장 골프장 사우나 등 커뮤니티 시설을 다시 개방했다. 이곳 입주민관리센터 관계자는 “퍼스널 트레이닝(PT) 등 수업은 중단하고 자율 운동만 허용하기로 했다”고 했다.
규모가 작은 필라테스와 태권도 학원도 하나둘 영업을 재개했다. 마포구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임모씨(50)는 “2주 더 영업을 중단하면 한 달 매출이 0원인데, 내야 할 월세는 100만원이나 된다”며 “이번주부터 방역 지침을 지키면서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주 만에 영업을 재개한 관악구의 한 안마시술소는 25% 할인 행사를 하고 있다.지난주까지 이들 시설은 대부분 휴업했다. 정부가 지난달 22일부터 2주간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면서다. 종교시설 실내체육시설 유흥시설 등 3개 업종에 영업 중단을 권고하는 초강도 조치였다. 정상 운영을 하려면 △마스크 의무 착용 △사람 간 간격 1~2m 유지 등 방역 지침을 지키라고 요구했다. 지침을 지키지 않은 곳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 손해배상을 청구한다고 경고했다. 하루 매출이 1억원에 달하는 강남 주요 클럽들까지 스스로 문을 닫은 이유였다.
업주들 “왜 우리만 쉬나”
하지만 이번 사회적 거리두기 연장 조치는 실효성이 떨어지는 분위기다. 종로구의 한 헬스장 업주는 “처음에는 정부 방침에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매출은 몇 주째 0원이고 직원들 월급도 주기 힘들어 영업을 다시 시작했다”고 말했다.업종별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예컨대 같은 체육시설이지만 헬스장과 달리 당구장 등은 운영 중단 권고가 내려지지 않았다. 클럽 등 유흥시설이 아닌 일반 술집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한 청원인이 “음식점, 마트, 커피숍 등 사람이 붐비는 많은 업종 중 유독 헬스장만 제재하느냐”고 항의하기도 했다.무뎌진 시민 의식도 사회적 거리두기의 효과를 낮추는 요인이다. 지난 4일 밤 서울 논현동의 한 클럽 앞은 입장을 기다리는 대기줄이 수십m에 달했다. 5일 오후 10시에 찾은 이태원동의 한 술집 안은 14개 테이블이 전부 만석이었다. 50~80㎝ 간격으로 30여 명이 앉아 있었다.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안내문이 있었지만, 마스크를 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같은 날 찾은 관악구의 한 PC방에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직원이 홀로 음식 조리와 청소를 했고, 25명의 손님 대부분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손님에게 방명록을 적게 하고 있지만 이름을 쓴 사람은 대여섯 명뿐이었다.정기석 한림대 의대 호흡기내과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클럽 같은 유흥시설 등 거리두기를 시행하기 어려운 곳은 아예 통제하는 게 낫다”며 “감염 위험이 높은 곳에 대해선 보다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감염 위험이 있다고 모든 곳을 통제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우선 집단감염 위험이 높은 곳을 중점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