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작은 배의 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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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환 < 포스텍 총장 mhkim8@postech.ac.kr >매년 이맘때면 영국 런던 템스강 변엔 수만 명이 몰린다. 1829년 시작된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의 조정 경기 ‘보트 레이스’를 구경하려는 인파다. 런던 중심가 가까운 곳에서 두 대학의 자존심 건 싸움을 손쉽게 볼 수 있는데, 상대 전적은 케임브리지대가 조금 앞서고 있다. 한국에서도 포스텍과 고려대,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서울대, 연세대, UNIST(울산과학기술원), KAIST 등 대학 간 경기가 활발하다. 체력을 기를 수 있을 뿐 아니라 팀워크와 리더십을 배우는 교육적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조정 경기에서 콕스(cox), 타수(舵手)의 역할을 들여다보면 꽤 흥미롭다. 콕스는 원래 콕스웨인(coxswain)의 준말로, 어원은 중세시대로 올라가 ‘작은 배’를 의미하는 중세 영어 ‘cock’과 ‘하인’을 의미하는 ‘swain’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굳이 풀어보면 ‘작은 배의 하인’인 셈이다. 조정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역할에 하인이라는 말을 붙인 것은 어떤 연유일까? 배의 맨 뒷자리에 앉기 때문일까?2㎞의 강을 8명의 조수(漕手)가 노를 저어 빠르게 나아가려면 힘과 박자를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힘센 한 명이 힘차게 노를 젓는다고 해도 전체가 따라가지 못하면 배가 흔들려 제 속도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때론 바람과 물결이 진로를 방해한다. 그래서 타수가 구성원을 살피며 상황에 맞게 모두 힘과 박자를 맞추도록 해 경기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힘이 빠지지 않도록 격려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스타트 순간의 가속, 스피드 유지와 스퍼트를 알려주는 것 역시 유일하게 배가 나아가는 방향을 볼 수 있는 타수가 해야 할 일이다.
타수의 역할은 배 위에서 끝나지 않는다. 경기가 없는 사이에도 기록을 정리하고 전체적인 훈련 일정을 관리하며 코치진과 조수들의 관계를 중재하는 것도 그의 일이다. 리더로서 앞장서 뛰기보다 뒤에서 구성원을 격려하고 그들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세심하게 뒷받침하는 ‘하인’인 것이다.
시대가 격렬하게 변화할수록 이런 ‘타수의 리더십’은 그 빛을 발한다. 1970~1980년대에는 ‘잘살자’는 목표로 강한 리더십 아래 사회가 한 방향으로 나아갔다면, 밀레니얼 세대가 성장한 지금은 개인과 사회 속 단위조직의 개성이 강해졌다. 사고의 발상도 더욱 자유로워지고 개인주의적 성향도 짙어졌다. 그렇기에 리더 한 사람이 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강한 리더십은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 쉽다. 조정의 타수처럼 개개인과 단위조직을 돌아보고, 그들의 성장을 뒷받침해주고 격려하며 모두 함께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가는 리더십의 의미가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출현으로 사회와 경제에 때아닌 한파가 불어닥친 지금 이 시기, 앞에서 비전을 외치며 혼자 달려가려는 리더십보다는 배의 가장 뒷자리에 앉아 팀 전체가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돕고 격려하는 ‘작은 배의 하인’ 리더십이 우리에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