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미 다이먼 JP모간체이스 회장 겸 CEO, 심장수술 딛고 복귀한 '월가의 리더'

"전례없는 위기지만 결국 극복할 것"
美 금융시장에 희망 메시지 전하다

대학 최우등 졸업후 하버드 MBA
골드만삭스 입사 제안 뿌리치고
카드사 아멕스 들어가 경력 쌓아
부실 은행 CEO 맡아 정상화시켜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최근 미국 뉴욕 월가 투자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월가의 리더’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간체이스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복귀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지난달 5일 심장수술을 받았고 거의 한 달 만인 지난 2일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그가 떠나 있던 시기, 세계 금융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지난달 다우지수가 2주 만에 30% 이상 떨어지는 폭락장이 펼쳐지자 월가에선 ‘리더십 부재가 불안감을 키웠다’는 분석까지 나왔다.복귀한 다이먼 CEO는 6일 주주들에게 보낸 연례 서한을 통해 건재함을 알렸다. 그는 이 서한에서 “미국은 강력한 국가로서 이번 위기로부터 벗어날 자원을 갖추고 있다”며 “미국은 여전히 전 세계가 보지 못했던 가장 번창하는 국가”라고 강조했다.

○M&A와 리스크 관리, 구조조정

다이먼 CEO는 월가를 대표하는 억만장자 금융인 중 하나다. 그가 보유한 자산은 JP모간체이스 주식 5억달러어치를 포함해 14억달러(약 1조7000억원)에 달한다. 그는 미국 최대 금융그룹인 JP모간체이스에 2002년 합류했고, 2005년 말 CEO에 올라 15년째 회사를 이끌고 있다.다이먼이 본격적으로 회사를 지휘한 2006년 JP모간체이스의 순이익은 144억달러였다. 지난해 순이익은 364억달러로 두 배 넘게 뛰었다. 1799년 맨해튼은행으로 출범한 200여 년 회사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이익이었다.

다이먼은 회사를 경영하면서 지속적인 인수합병(M&A)으로 덩치를 키우면서도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군살을 뺐다. 외형과 내실을 균형 있게 추구했다는 평가다. 그는 “항상 모든 자산과 모든 부채와 모든 사람을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신만의 팩트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이먼은 1956년 미국 뉴욕시의 그리스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리스에서 건너온 그의 할아버지는 파파드미트리우였던 성(姓)을 프랑스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다이먼으로 바꿨다고 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증권회사 시어슨에서 주식중개인으로 일했다.다이먼은 터프츠대에서 심리학과 경제학을 전공했고 최상위(숨마 쿰 라우데) 성적으로 졸업했다. 대학 재학 당시 그는 시어슨의 M&A 전략에 대한 리포트를 썼고, 이를 본 샌디 웨일 시어슨 CEO는 다이먼을 여름방학 동안 인턴으로 채용해 예산 업무를 돕게 했다. 웨일은 이후 다이먼의 멘토가 됐다.

대학 졸업 후 다이먼은 컨설팅회사에서 2년간 일한 다음 하버드비즈니스스쿨로 갔다. 제프리 이멀트 전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 스티브 버크 컴캐스트 수석부사장 등이 동기다.

1982년 하버드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딴 그는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의 제안을 뒤로하고 웨일이 이끄는 카드회사 아메리칸익스프레스(아멕스)에 입사했다. 다이먼의 아버지도 당시 아멕스의 임원이었다.○금융인이자 기업인

1985년 다이먼은 웨일과 함께 아멕스를 떠났고, 둘은 소비자금융회사인 커머셜크레디트를 인수했다. 다이먼은 30세의 나이에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아 회사의 흑자 전환을 이뤄냈다. 커머셜크레디트는 이후 증권, 보험, 부동산 등으로 영역을 넓혔고, 1993년 트래블러스그룹으로 재탄생했다. 1998년 트래블러스는 씨티은행과 합병해 씨티그룹으로 거듭났다.

다이먼은 그러나 1998년 웨일로부터 쫓겨나게 됐다. 웨일의 딸을 승진에서 배제했다는 이유였다. 2년 가까이 절치부심한 그는 2000년 3월 미국 5위 은행이던 시카고의 뱅크원 CEO로 선임됐다.

다이먼은 그동안 배웠던 노하우를 유감없이 발휘해 부실했던 뱅크원을 우량 금융회사로 탈바꿈시켰다. 취임 당시 그는 “나무 몇 그루를 솎아내려고 여기 온 게 아니다. 대형 톱을 써서 숲을 아예 밀어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다이먼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CEO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

JP모간체이스가 2004년 뱅크원을 합병하면서 다이먼은 합병법인의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았다. 2005년 말에는 CEO가 됐고, 1년 뒤에는 회장에 올랐다. JP모간의 직전 CEO인 빌 해리슨은 다이먼을 후계자로 지명한 이유를 “그처럼 가계와 기업, 투자, 증권, 보험 등 금융의 모든 영역을 깊게 이해하고 있는 금융인은 거의 없다. 게다가 경영자로서 회사 운영과 회계, 법적 문제 등도 통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례 없는 위기도 결국 극복”

다이먼의 진가는 2008년 발발한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드러났다. 위기의 원인이 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구조적 문제를 미리 감지한 그는 지속적 구조조정과 보수적 투자 결정으로 실탄을 쌓아놓고 있었다. 위기가 터지자 그는 도산 위기에 몰린 베어스턴스와 워싱턴뮤추얼을 차례로 인수해 몸집을 키웠다. JP모간체이스는 씨티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 등을 제치고 미국 1위 금융그룹으로 올라섰다.

다이먼은 민주당 지지자이면서도 오바마 정부가 추진한 금융 규제 강화에 반대 의견을 내는 등 월가 리더로서의 소임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그는 월가의 탐욕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맞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투명하고 뿌리 깊은 금융시장을 갖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라”고 대응했다.

다이먼은 매년 4월께 주주들에게 연례 서한을 보낸다. 이 서한에 금융시장뿐 아니라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자신의 분석과 전망을 담다 보니 매년 분량이 늘어나고 있다.올해 서한에서 다이먼은 “우리는 전례 없는 위기보다 강하며, 결국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소기업부터 대기업까지 최대한 지원할 것이며 위기를 핑계 삼아 정부에 규제 완화를 요구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